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가 동북아 안보지형의 특수성으로 한일관계의 키는 북한이 쥐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일본과 북한 간의 국교정상화 등 대북 관계설정에서 한국을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틈이 벌어진다면, 일본과 북한이 우리를 ‘패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
강 명예교수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더불어민주당 강창일·오영훈·김한정 의원실 주최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립을 넘어서-한일관계, 진단과 해법’ 특별강연에서 “매우 역설적인 패러독스인 것이 최종적으로 큰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북한”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움직임이 한일관계, 한국과 일본의 안전보장에 있어서 아주 큰 결정타가 될 수 있다”며 “남북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그 결과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가 한국을 생략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일한국인으로 처음 일본 도쿄대 교수가 된 강 명예교수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소 자주 만나 한일관계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한일외교에서 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날 강연에는 송영길, 백재현 민주당 의원과 김 전 대통령의 삼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 주한일본정부공사 미바에 다이스케 공사 등이 참석했다.
강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일본에서 납치당했지만, 일본에 가셔선 납치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당시 오부치 총리를 만나 오히려 미래를 내다보면서 협력하자고 하셨다”며 “지금 김대중 대통령께서 계셨다면 어떠한 말씀을 하실까”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강 명예교수 부부는 김홍걸 의장과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을 참배했다.
한일관계를 한미일 동맹을 넘어 대북관점에서도 조망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강 명예교수는 “만약 일본과 북한의 정상회담에 한국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이 안다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본의 접근은 당연히 바뀔 것”이라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북한이 어디까지 협상을 진전시키느냐에 따라 한일관계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의 선택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이 리스크로 지적됐다. 강 명예교수는 “한일이 더 격렬하게 대립한다면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이 북한과 무조건적인 협상을 하고 1조엔 내지 2조엔 정도 되는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평양 측에 전달한다면 북한 정부가 어떠한 판단을 내릴까”라고 반문했다.
강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전략을 촉구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3단계 통일론의 1단계인 국가연합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본에도 이익이라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며 “한국이 국가연합으로 나아가고 장차 미래의 통일을 그렸을때 결코 한일관계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윈윈할 수 있다는 점을 일본에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를 아우르는 전략적 설득이 유효할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선 “일본 정부는 북한이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을 가지고 핵을 동결한 채로 남북이 통일된다면 8000만에 가까운 핵보유국이 일본의 바로 옆, 이웃에 존재한다는 것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아베정권이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일본 국민들도 남북이 하나가 되면서 자신들의 안보환경이 크게 바뀌는 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짚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강 명예교수는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는 미국의 개입을 촉구하는 카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한미관계가 매우 어려워진다“고 제언했다.
이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으면 한미일 삼각 트라이앵글이 상징적인 의미에서 큰 금이 가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일본 입장에서 유리한 결말은 아니지만, 이 경우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미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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