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여론전을 개시한 가운데, 마크 에스퍼 미 신임 국방장관이 8일 취임 후 처음 방한하면서 “안보청구서를 받아들이라”는 미국의 압박 강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6월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과 지난달 방한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바통을 이어 받아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에 주력하면서 중국 견제 등을 목적으로 한 중거리 미사일의 한국 배치 가능성도 떠볼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이 요구해온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한국군 파병 가능성을 높이며 미국이 다른 요구에선 한발 물러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8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군 당국은 호르무즈에 한국군 파병이 가능한지를 따지기 위해 진행하던 법률 검토를 최근 사실상 마무리했다. 군 당국은 파병이 결정될 경우 2009년부터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돼 다국적군 평화활동에 참여 중인 청해부대를 활용하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청해부대 파병 연장 동의안에 따르면 청해부대 작전 지역은 아덴만 해역 일대지만, 우리 국민이나 선박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해역도 작전 지역에 포함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국회 추가 동의가 없어도 유사시 작전 구역을 아덴만 해역 외로 확대할 수 있는 것.
군 당국은 2014년 내전이 격화됐던 리비아에서의 한국 교민 철수를 위해 청해부대를 파견했던 사례 등 작전 지역을 일시적으로 확대한 과거 사례도 모두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다만 현재의 청해부대 병력 및 전력으로는 아덴만 작전 외 작전을 수행하는 데 무리가 있어 병력과 전력을 증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처럼 사실상 호르무즈 파병 준비를 마쳤다는 점을 에스퍼 장관에게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차례로 만난 뒤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다. 에스퍼 장관은 7일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호르무즈 파병 협조를 촉구한 만큼 한국에도 같은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파병 가능성을 높였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시동을 건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낮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에스퍼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내라’는 미션을 받고 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체인 외교부는 8일 “협상 대표단도 꾸려지지 않았다”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러나 올 초 한미 간 끝장 협상 끝에 겨우 타결된 10차 방위비 협상 유효기간이 1년에 불과한 만큼 외교부는 이르면 이달 말 협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여론전을 시작으로 미국의 인상 요구가 올해 더 집요해질 공산이 큰 만큼 조속히 협상단을 꾸려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일 갈등으로 청와대가 파기를 시사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대해서도 에스퍼 장관은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 입장을 재차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에스퍼 장관이 협정에 대해 얘기하면 협정 파기로 기울었던 정부 당국자들은 파기를 밀어붙일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에스퍼 장관은 중국의 반발을 불러 ‘제2의 사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중거리 미사일의 한국 배치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볼턴 보좌관은 6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한국과 일본, 다른 지역의 동맹국 방어에 관한 것”이라며 한국을 공개 지목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는 공식 의제가 아닌 데다 최근 거론된 사안인 만큼 이번엔 서로의 입장만 교환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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