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저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잘못됐다. 역사 문제에 갈등이 늘 있어왔다. 그건 역사로 끝내야 한다. 과거와 미래 투 트랙으로 가자’고 했어요. 그러나 일본은 경제 영역으로 전선을 확대했어요. 그래서 심히 우려를 표명했죠. 이번에 일본에 가서도 ‘이건 안 된다.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느냐’라고 항의도 했고 경고도 했어요.”
“자민당 전체는 아니다”
-일본 의원에게 어떻게 말했나요?
방일단은 7월 31일 오후 5시 자민당의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과 면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시간이 임박해 8월 1일 오전 11시 30분으로 연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어 7월 31일 오후 9시께 취소 연락을 받았다.
“아베, 한국과 북한 같이 묶는 듯”-어떤 측면에서 이해가 되나요?“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친한파거든요. 한국에 지인도 많고 한일관계가 이렇게 험악하면 안 된다는 입장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아베 총리가 워낙 독주하니까 우리에게 줄 답이 없는 거라. 간사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으니 ‘예, 예, 예’만 할 수도 없고 ‘아닙니다’라고도 못 하고. 입장이 난처하니까 슬금슬금 다른 이유를 대서 피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또, 그분은 국회의장에 내정돼 있다는 말도 있고 여러 설이 있어요. 그러니 아베 총리의 말을 안 들을 수도 없고 한국 국민에게 싫은 소리 할 수도 없고 그런 난처한 처지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입법부의 최고 일본통 의원이 보기에, 아베 정부가 한국에 IT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한 ‘실제 이유’는 무엇인가요? “냉정하게 분석해봐야 하는 문제인데요. ‘(참의원)선거용’ ‘자국 정치용’은 아닌 것 같아요. 아베의 정신세계를 좀 분석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아베와 관련해 저서에서 ‘대일본주의’를 이야기했죠. ‘아베 총리는 대일본제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한국을 괴롭히는 게 대일본주의와 어떻게 연결되죠? “중국은 중국몽이라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걸잖아요. 아베 총리도 그런 생각을 하는 듯해요. 그러려면 평화헌법을 제정하고 군사대국화를 해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 한민족 위협론을 내세우는 것 같아요. 과거엔 북한 위협론을 갖고 평화헌법 제정을 주장했죠. 이젠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한국과 북한을 같이 묶어서 ‘한국에서 안보물자,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건너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민족 위협론을 꺼내 평화헌법 제정과 군사대국화를 이뤄 대일본제국의 부흥을 꿈꾸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현실이 꿈처럼 됩니까? 자충수가 될 수 있죠.”
“일본 내에서도 ‘경제 보복은 잘못’”
-일본에서 역풍이 불고 있다고 보나요? “일본 여야 분위기를 보니, 대부분은 ‘1965년 한일협정체제는 유지돼야 한다. 배·보상은 끝났다’고 하면서도 ‘경제 보복은 잘못됐다’고 보더라고요. 일본 국민은 여론 조작에 의해 세뇌된 부분이 있어서 ‘한국은 국제법도 안 지키고 약속도 안 지키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아베로선 이 부분에선 성공한 것이죠. 그러나 경제 보복엔 대부분이 반대해요. 일본 국회도 경제보복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제강점기 당시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원고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신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내에서 2005년 2월 소송을 낸 지 13년 8개월 만의 판결이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 사법부 판사들의 법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요. 예전엔 일본법을 공부한 사람이 주류를 이뤘는데 지금은 서양 근대법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주류예요.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화한 것은 불법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배상의무를 판결한 거예요. 개인과 기업 간의 민사소송에서 기업에 배상을 요구한 것이죠. 이건 당연히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합니다. 보상이 아니라 배상입니다. 민사재판에서요.”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완전히 다 해결됐다고 보는데요. “일본이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는데요. 한일협정은 식민 지배가 불법임을 전제로 하지 않았어요. 이번 판결은 불법임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불법적 행위가 되고 배상이 됩니다.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에요. 기업이 개인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생각해요.”
-현 경제전쟁을 해결할 방법으로 생각해둔 것이 있나요? “대화해 오해가 있으면 풀고, 일본은 배상해야 해요. 기업이 개인에 대해서는 말이죠. 아베 정부는 훼방을 놓아선 안 돼요. 기업들이 과거부터 배상할 생각이 있었어요. 다 해도 큰돈이 아니거든요. 65억 원 정도. 그다음에 군인 군속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있어요. 사용자가 일본 국가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한국 정부에서 (한일협정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돼 있어 국내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지원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용자가 국가냐 기업이냐를 구분해서 봐주세요.”
-아베 정부가 그 해법을 받을까요? “받아야지요. 37만 명이나 됩니다. 한국에서 처리하겠다는데 안 받으면 안 되지.”
“기습 도발”“국민이 보통 민족입니까. 호락호락하지 않죠.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느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하는 거죠. 지극히 당연한 건데, 한일관계가 좋은 것이 양국에 좋기 때문에 문제가 빨리 진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정치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선전선동하면 안 되는 것이고요. 잘못하면 오해받을 수 있고 시민들의 순수한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 중구의 그런 사태도 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의지나 강한 결의를 보여준 것이지 그 자체가 반일 감정을 자극한 건 아니잖아요? 반면, 일본 정치권은 한국 때리기를 해요. 한국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 약속을 안 지키는 국가’라고 하죠. 우리는 절제 있게 용어를 사용하는데 가끔 강력한 용어가 나올 때가 있죠. 그건 우리의 결의를 보여주는 거예요.”
“일제강점기 36년이라는 상처가 있죠. 영원한 망각은 없어요. 그간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스포츠·문화 교류 많이 하면서 성숙한 한일관계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러나 상처는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죠. 이번에 침략적 행위를 하니 악몽이 되살아나는 거죠. 기억이 재생되는 거죠. 좋은 기억이 아니라 나쁜 기억이. 또 우리를 치려고 해? 이렇게 하면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겁니다. 완전한 망각은 인류사에 없어요. 임진왜란도 기억하잖아요. 동학혁명의 악몽도 다시 살아나고요. 정치는 참 조심해야 해요.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데 다시 헤집는 꼴이 돼버렸어요.”
“논리 전개 왔다 갔다 해서…”
“그렇죠. 분업체계를 깨려니 일본도 손해가 가죠. 우리가 좀 더 손해를 볼지 모르죠. 일본은 경제 규모가 크고 기초과학이 발달해 있으니까요. 그러나 양국 모두에 상처만 남는 치킨게임이죠.”
다시 생각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