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16일 막말에 가까운 담화를 발표하며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경제 비전을 내놓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다. 외무성에 이어 대남 공식 기구인 조평통까지 나선 북한은 보름간 다섯 차례에 걸친 말 폭탄을 쏟아냈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도 거듭 대북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청와대를 향해 인신 모독 수준의 막말로 면박을 주며 대화 거부 의사를 못 박은 것. 북-미가 3차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조율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북핵 외교의 변방으로 몰아내며 북한이 한반도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 평화경제론에 ‘삶은 소대가리’ 조롱
북한 조평통 담화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무엇을 크게 떠벌리기만 하고 실제의 결과는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평화경제를 제안하며 극일 메시지를 담은 경축사가 한마디로 별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사고가 건전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이례적인 수준의 막말을 쏟아냈다. 11일 외무성 담화에서 청와대를 향해 “겁먹은 개”라고 조롱한 북한이 막말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린 것이다.
특히 조평통 담화는 문 대통령의 경축사 핵심 메시지였던 평화경제론에 대해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역력하다”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을 향해 “저들이 북남 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건설하며 조선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하늘을 보고 크게 웃을) 노릇”이라고도 했다.
북한의 대남 비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밝힌 이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하노이 노딜’ 이후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주장이 먹혀들지 않자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로 불만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가 선(先) 비핵화 진전, 후(後) 남북관계의 입장을 보이자 현 국면에서 한국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북한이 대놓고 한국을 흔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남북 대화 빗장 걸고 경협 몸값 높이기
북한은 또 “남조선 당국자들과 다시는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며 당분간 남북 대화 중단은 물론이고 앞으로 열릴 비핵화 협상에서도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날 담화에서도 미국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한국에 비난을 집중하면서 ‘미국과 직접 상대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한 것. 조평통은 “합동 군사연습이 끝난 다음 아무런 계산도 없이 계절이 바뀌듯 저절로 대화 국면이 찾아오리라고 망상하면서 조미(북-미)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 보려고 목을 빼들고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런 부실한 미련은 미리 접는 것이 좋다”고 했다.
특히 북한이 11일 외무성 담화에 이어 다시 한 번 ‘계산’을 언급한 것을 두고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는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몸값 높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화경제를 추진하려면 먼저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한편 북한군 김수길 총정치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군 대표단은 이날 중국을 방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긴장을 조성해온 북한군의 최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찾은 것을 두고 중국의 북한 군사 안보 분야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 대표단이 방중 기간에 중국 측과 군사 분야 연대를 강화하고 한반도 정세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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