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정 헌법,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은?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2일 14시 00분


Q. 올해 4월 북한은 2016년에 개정하였던 헌법을 재차 개정하였습니다. ‘주체사상, 선군사상’ 대신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넣고 ‘국무위원회의 권한 규정’ 등 정치조항과 함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 경제 관련 조항도 새로 삽입되었는데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북한의 정책기조와 어떠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안교원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13학번


A. 이번 북한의 신헌법은 김정은 위원장 시대의 정착과 함께 부분적인 변화를 법제화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국무위원장을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최고수반으로 명문화함으로써 김정일 시대의 비정상을 정상화했습니다. 기존의 헌법에는 북한의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직책인 국무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김정일 위원장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국가 비상사태에 직면해 북한판 계엄통치라 할 수 있는 선군정치를 실시하고, 그 총책임자로서 국방위원장의 직책을 거머쥐었습니다. 반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대외적인 국가수반의 지위를 부여했지만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지요. 따라서 이번 개정은 어색한 헌법상의 국가수반의 지위를 정상화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새로 구성된 국무위원회 위원 등 당정 지도부들과 올해 4월 1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북한은 이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새로 구성된 국무위원회 위원 등 당정 지도부들과 올해 4월 1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북한은 이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했다.

또한 기존 헌법 3조의 선군사상, 59조의 선군혁명노선을 삭제함으로써 선군정치라는 비정상성도 정상화했습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군의 역할은 미미하며, 그 이유는 공산당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지요. 막강한 중국의 인민해방군도 국가가 아닌 당의 지도를 받을 정도니까요. 선군정치는 군대가 앞장선다는 의미니까 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어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하자마자 선군정치의 최고 실세 리용호 총참모장을 처형하고 고위 장성 계급의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는 소위 견장정치를 통해 군을 견제한 것도 선군정치에서 비대해진 분한 군부의 힘을 빼기 위한 것이었지요.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변화와 지속의 두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핵에 대한 집착, 권력집중 및 사회통제의 강화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변화의 모습도 나타나며 이번 신헌법도 그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김정은 체제의 변화는 경제영역에서 두드러집니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정책의 특징은 제한개혁과 제한개방입니다. 제한개혁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되 시장경제의 요소를 도입해 경제의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입니다. 제한개혁의 핵심은 농업분야에서 가족단위의 자율 경작을 허용하는 포전담당제와 기업분야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나뉘어 집니다. 특히 김정은 체제가 주목하는 분야가 기업에게 자율성을 부여해 국가계획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입니다. 이번 신헌법은 김일성 김정일 시대 계획경제의 핵심인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를 삭제하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33조)를 국가 경제관리의 기본방식으로 명문화했습니다. 또한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한다”(32조)라는 내용을 삽입했는데 이는 시장활동을 보장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요. 주목할 대목이지요.

제한개방은 경제개발구로 명명된 일종의 경제특구를 통해 부족한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외자유치 사업을 의미합니다. 김정은 체제는 집권이후 접경지역과 해안선을 중심으로 경제개발구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문제는 대북제재와 북한 경제에 대한 신뢰성의 결여로 외자유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지요. 이번 북한 신헌법의 36조는 “국가는 대외무역에서 신용을 지키고 무역구조를 개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외국의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신헌법에서는 이외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헌법은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쉽게 개정될 수 있는 위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 북한은 자주 헌법을 바꿉니다. 우리의 경우 헌법개정은 정치권은 물론 전 사회적 동의가 있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북한 헌법개정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북한의 헌법은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노동당 보다 하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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