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앞두고 신경전을 반복하는 이유는 ‘첫 딜’의 안건에 대한 이견 때문인 것이라는 분석이 26일 제기된다.
제재 완화로 ‘당근’을 제시하는 미국에 대해 북한이 ‘새 계산법’을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의 ‘새 계산법’에 대한 요구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가시화됐다. 북한은 연말까지 미국이 ‘새 계산법’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고 이 같은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월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의 회동이라는 ‘빅 이벤트’를 겪고도 대화 테이블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아직 이 같은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약간의 인식의 차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미국은 향후 열릴 회담이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의 연장선에서 열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은 ‘새 계산법’을 요구한 이후부터 과거 회담에서 논의된 안건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으로 정리된 듯하다.
하노이 이후 양 측이 내부적으로 겪은 변화를 봐도 이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은 기존의 협상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북한은 전면적으로 협상 채널과 인적 구성에 변동을 줬다.
이후 북한의 안건은 제제 완화에서 ‘체제 보장’으로 옮겨갔다.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회의에서의 시정 연설에서 “그 무슨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발언했다.
제재 완화로 ‘민수 경제’의 활성화를 꾀하던 북한은 지난해 6월 이후 이어진 협상에서 핵무기, 기술, 시설의 포기에 대한 미국의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비핵화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요 핵시설과 핵무기의 포기 등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함을 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안건이 체제 보장으로 변화한 것은 비핵화 이후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맥락이다.
이후 북한은 관련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남북 당국 간 대화는 중단했으나 중국과의 정상회담으로 체제 보장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으며 집권 후 처음으로 러시아도 찾아 지원군을 확보했다.
더불어 대북 제재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신형 무기들을 대거 개발해 지난달 25일부터 한 달 여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핵을 포기한 이후 북한의 국방력을 보장하는 무기들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강경 행보, 대화 중단 조치는 조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의 태도 변화의 시한을 연말로 설정했다. 확고한 태도 변화 조짐이 감지, 확인되지 않는 한 조속하게 대화에 나설 의지가 없음을 밝힌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의 도발 이후 꾸준히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 “유엔 결의 위반일 수는 있어도 양자 합의 위반은 아니다”라는 발언은 매우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는 북한이 취소를 요구했으나 강행한 한미 연합 군사연습에 대한 파격적인 발언으로 이어졌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에 대해 “완전한 돈 낭비”라거나 “솔직히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미국의 정상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은 것은 파격을 넘어 충격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은 한미의 예상보다 이번 연합훈련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과 반발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예상한 시기에 재개되지 않자 진화(달래기)를 위해 파격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주목할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해 한미가 그랬듯이 올해에도 ‘진정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군사훈련의 취소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군사훈련의 존폐와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 발언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냥 넘기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북한의 향후 행보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놓고 전망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명분 삼아 대화에 나설 움직임을 조금 구체화하는 것이다. 반면 말로만 달래려들지 말고 물밑 접촉에서 실질적인 변화의 청사진을 제시할 것을 더 강하게 요구하며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빠르게 가시적인 북미 접촉이 이뤄질 계기는 9월 유엔 총회다. 북한은 지난 23일 대미 강경 비난 담화를 내놓은 실무협상의 총책임자 리용호 외무상을 파견할 예정이다.
유엔 총회를 계기로 북미 대화가 뚫리기 위해서는 사전 물밑 접촉의 성과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북미는 다시 한번 ‘진의’를 확인하기 위한 접촉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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