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시정 日 요구, 국제사회 원칙에 배치…일관된 신념
文대통령 "원칙을 타협할 순 없어"…대담집에서 오랜 소신 피력
盧정부 민정수석 수락 때도 오직 '원칙'…"원리원칙 지키는 일만"
"일본은 정직해야" …'신뢰할 수 없는 나라' 日 주장에 맞불 성격도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일본을 강한 수위로 비판한 것은 ‘원칙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평소 본인의 소신에 따른 조건 반사적 반응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 원칙을 어겨가며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을 시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역사를 왜곡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과거사를 경제·안보 문제와 연계해 부당한 보복조치를 취한 것도 모자라 엉켜버린 논리를 회복하고자 역사를 왜곡하는 등 아베 정권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를 꼬집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일본을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광복절 경축사를 기점으로 한동안 수위를 낮춰왔던 문 대통령이지만 이날 메시지는 첫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배제 조치 때 수준으로 강경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정직해야 한다. 경제 보복의 이유조차도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며 “근거 없이 수시로 말을 바꾸며 경제 보복을 합리화하려고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어떤 이유로 변명하든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것이 분명한데도 대단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작심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태도 또한 정직하지 못하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 불행한 과거 역사가 있었고, 가해자가 일본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덧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일본이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경제 문제와 안보 문제를 연계시킨 보복이라는 적반하장식 주장을 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아베 총리는 지난 27일 “한국이 양국 간 상호 신뢰를 해칠 조치를 취한 상황에 있다. (한국에) 국가 간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싶다”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한일 청구권 협정을 연계하는 주장을 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국가 간 약속인 한일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것이고, 이를 통해 한일 간 신뢰가 훼손됐다는 기존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고노 다로(河野太?) 일본 외무상 역시 전날 기자회견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거론하면서 “한국이 역사를 바꿔 쓰려 한다면 불가능하다”며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의 시정을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을 가리켜 “정직하지 못한 나라”라고 비판한 것은 아베 정부 주장에 대한 맞불 성격도 담겨 있다. 아베 정부가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며 국제사회에 여론전을 펴자, 과거사에 눈감는 정직하지 못한 나라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독일이 정권이 바뀌어도 나치 학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거듭해서 피해 당사국에 사과를 한 점을 예로 든 것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의 잘못을 도드라지게 보이려는 의도가 담겼다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독일이 과거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시시때때로 확인하며 이웃 유럽 국가들과 화해하고 협력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나라가 되었다는 교훈을 일본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대법원 판결 시정 요구는 강제노동 금지와 3권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의 대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문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이다.
원칙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굳게 지켜온 신념이라는 내용은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한다’에 소개 돼 있다.
문 대통령은 대담집에서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원칙이다. 인생사가 타협 아닌가”라며 타협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원칙을 타협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정치를 가리켜 ‘타협의 예술’이라 하지만, 원칙만큼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변호사의 길을 오래 걸었던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도 원칙에 대한 일화를 술회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당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던 문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을 권유하자 내세웠던 조건이 바로 원칙을 지키는 역할만 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제가 정치를 잘 모르니, 정무적 판단능력이나 역할 같은 것은 잘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면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를 쓰시라”고 민정수석 수락 배경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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