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북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거대한 ‘뉴스의 블랙홀’이 되어 버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탓이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미 실무회담의 진척이 거의 없고 비핵화 대화의 동력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왕이의 방북이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왕이, 북-중은 ‘풍우동주’
왕 부장은 3일 카운터 파트인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했습니다. 왕 부장은 특유의 사자성어를 인용했습니다. ‘비바람 속에서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의 풍우동주(風雨同舟)란 말을 꺼냈는데 흔들림 없는 북-중 우호관계를 과시한 것입니다.
연일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아 대고, 미국과는 냉랭하다 못해 파국을 떠올리게 할 상황에서 왕이의 방북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몇 가지 숨어 있는 코드를 찾아 봤습니다.
첫째 중국 전문가들은 왜 대외연락부장이 아닌가에 주목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북한과 중국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반대하고 북한을 지원한다) 전쟁을 치른 사이이고 둘 간의 관계는 국가수립이전 공산당간의 교류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중국의 방북사절 대표는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맡는 게 관례였습니다. 형제관계이고 일종의 특수관계라는 대외적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럼 왜 왕이냐는 겁니다. 방북단을 왕이가 이끈 것은 단순히 지나치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숭타오 대외연락부장 대신 왕 부장을 택함으로써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는 특수관계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 간의 외교관계로 북-중 관계를 다루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에게는 가장 민감한 외교현안인 홍콩문제를 언급한 것도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외연락부장이 공산당 차원에서 언급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셋째 왕이가 방문함으로써 리용호 부장과 주로 다뤘을 의제는 비핵화와 관련한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왕이는 2003년 8월 시작된 6자 회담에 부부장(차관급) 자격으로 중국 측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일각의 관측처럼 올해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의 방중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왕 부장이 김 위원장의 방북으로 이어질까요?
과거 사례를 보면 답변은 긍정적입니다. 왕 부장이 귀국한 뒤 사흘 만에 김 위원장은 두 번째 방중 길에 올랐고 첫 북미정상회담이 마무리 된 직후인 지난해 6월 19일에 또 한 차례 중국을 찾았습니다. 10월에는 △중국 국경절(1일) △북-중 수교기념일(6일) △북한 노동당 창당일(10일) 등의 기념일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천안문 망루에 김정은-시진핑이 나란히 오르는 그림을 떠올리는 전망도 나옵니다.
●‘9말 10초’ 김정은 방중은 없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1월 4차 방중 길에 올랐던 김정은 위원장의 추가 방북은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6월 시 주석은 중국 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북한을 찾았습니다.
방북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이유는 김 위원장이 꼭 가야할 절박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1, 2 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했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또한 이미 4차례의 방중 및 시 주석의 방북으로 경제협력 보따리를 든든히 챙겨둔 상태이기 때문이 굳이 또 다시 방중길에 오를 이유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3일 왕 부장은 “가능한 한 빨리 양국 정상간 중요합의를 이행할 의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북식량, 유류지원 및 군사협력 강화 등에 이면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입니다.
궁금한 것은 왕이의 방북 보따리에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하는 점입니다. 현재의 비핵화 실무협상의 교착을 풀 창의적인 안이 포함됐을지 가 관건입니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은 한계에 이르렀고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가장 다급해진 쪽은 오히려 중국이 됐다는 점이 아이러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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