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의 ‘비밀’…김정은 5차 방중은 없다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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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4일 14시 00분


중국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북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거대한 ‘뉴스의 블랙홀’이 되어 버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탓이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미 실무회담의 진척이 거의 없고 비핵화 대화의 동력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왕이의 방북이 큰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왕이, 북-중은 ‘풍우동주’

왕 부장은 3일 카운터 파트인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했습니다.
왕 부장은 특유의 사자성어를 인용했습니다. ‘비바람 속에서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의 풍우동주(風雨同舟)란 말을 꺼냈는데 흔들림 없는 북-중 우호관계를 과시한 것입니다.

왕이 중국외교부장(왼쪽)이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왕이 중국외교부장(왼쪽)이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일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아 대고, 미국과는 냉랭하다 못해 파국을 떠올리게 할 상황에서 왕이의 방북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몇 가지 숨어 있는 코드를 찾아 봤습니다.

첫째 중국 전문가들은 왜 대외연락부장이 아닌가에 주목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북한과 중국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반대하고 북한을 지원한다) 전쟁을 치른 사이이고 둘 간의 관계는 국가수립이전 공산당간의 교류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중국의 방북사절 대표는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맡는 게 관례였습니다. 형제관계이고 일종의 특수관계라는 대외적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럼 왜 왕이냐는 겁니다. 방북단을 왕이가 이끈 것은 단순히 지나치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숭타오 대외연락부장 대신 왕 부장을 택함으로써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라는 특수관계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 간의 외교관계로 북-중 관계를 다루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에게는 가장 민감한 외교현안인 홍콩문제를 언급한 것도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외연락부장이 공산당 차원에서 언급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셋째 왕이가 방문함으로써 리용호 부장과 주로 다뤘을 의제는 비핵화와 관련한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왕이는 2003년 8월 시작된 6자 회담에 부부장(차관급) 자격으로 중국 측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일각의 관측처럼 올해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의 방중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왕 부장이 김 위원장의 방북으로 이어질까요?

지난해 5월 김정은 위원장과 왕이 부장의 면담을 소개한 노동신문 1면
지난해 5월 김정은 위원장과 왕이 부장의 면담을 소개한 노동신문 1면



과거 사례를 보면 답변은 긍정적입니다. 왕 부장이 귀국한 뒤 사흘 만에 김 위원장은 두 번째 방중 길에 올랐고 첫 북미정상회담이 마무리 된 직후인 지난해 6월 19일에 또 한 차례 중국을 찾았습니다. 10월에는 △중국 국경절(1일) △북-중 수교기념일(6일) △북한 노동당 창당일(10일) 등의 기념일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천안문 망루에 김정은-시진핑이 나란히 오르는 그림을 떠올리는 전망도 나옵니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진 천안문에서 열린 전승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나란히 걷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진 천안문에서 열린 전승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나란히 걷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9말 10초’ 김정은 방중은 없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1월 4차 방중 길에 올랐던 김정은 위원장의 추가 방북은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6월 시 주석은 중국 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북한을 찾았습니다.

방북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이유는 김 위원장이 꼭 가야할 절박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1, 2 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대외적으로 과시했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또한 이미 4차례의 방중 및 시 주석의 방북으로 경제협력 보따리를 든든히 챙겨둔 상태이기 때문이 굳이 또 다시 방중길에 오를 이유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3일 왕 부장은 “가능한 한 빨리 양국 정상간 중요합의를 이행할 의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북식량, 유류지원 및 군사협력 강화 등에 이면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입니다.

궁금한 것은 왕이의 방북 보따리에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하는 점입니다. 현재의 비핵화 실무협상의 교착을 풀 창의적인 안이 포함됐을지 가 관건입니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은 한계에 이르렀고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가장 다급해진 쪽은 오히려 중국이 됐다는 점이 아이러니 합니다.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장(부장급·정치학박사 수료)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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