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日수출규제 69일만에 WTO 제소… “교역을 정치에 악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2일 03시 00분


‘징용판결 관련 정치보복’ 공식화… 백색國 제외는 제소대상 포함 안해
60일 양자협의 기간 거쳐 1심 시작, 최종 결론까진 3년 이상 걸릴듯
日 “WTO 규정 부합한 조치” 거듭 주장


정부가 불화수소 등 3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자유무역 원칙을 어겼다며 1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일본이 7월 4일 3개 소재의 수출 문을 걸어 잠근 지 69일 만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한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그간 ‘안보’를 위해 수출심사를 강화했다고 주장해 왔지만 정부는 이날 제소를 통해 국제사회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정치적 이유에 따른 명백한 무역보복임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제소장을 통해 밝힌 일본의 WTO 협정 의무 위반 사항은 크게 세 가지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조 최혜국 대우와 11조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 위반과 10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규정 위반이다.

최혜국 대우는 특정한 나라에 다른 나라와 동일한 수준으로 무역 조건을 유지하는 규정이다.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만 3개 핵심 품목에 대해 수출심사를 강화한 것은 최혜국 대우를 위반한 것으로 봤다.

WTO 체제에서는 수출입 허가 제도를 이용해 교역 물량을 제한할 수 없지만(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 일본은 건별로 개별허가를 진행해 현재까지 3건의 수출 계약만 허가한 점도 GATT 규정 위반으로 봤다. 아무런 사전 예고나 통보 없이 3일 만에 수출규제를 시행해 무역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하는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유 본부장은 “일본 정부의 각료급 인사들이 수차례 언급했듯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정치적 동기로 수출제한 조치가 시행됐다”며 “이번 분쟁 해결에 모든 역량을 총결집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한 부분은 제소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7월부터 진행돼 온 수출규제와 달리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지난달 28일 시작돼 아직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도 이달 중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맞불’을 놓을 예정인 만큼 제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이날 WTO 제소의 첫 번째 단계인 양자 협의를 요청하는 서한을 이날 일본 정부와 WTO 사무국에 전달했다. 60일의 협의 기간 내에 양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1심 기구인 패널 절차로 넘어간다.

패널보고서를 양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소기구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패널 절차가 마무리되려면 2년, 상소까지 총 3년이 걸린다. 정해관 산업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은 “최근 분쟁 건수가 늘어 상소심이 1년 이상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한국의 제소와 관련해 ‘일본의 조치가 WTO 규정에 부합하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11일 오후 사임)은 이날 오전 WTO 제소의 전제가 되는 양국 간 협의 요청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WTO 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의) 조치는 WTO 협정에 부합하다는 사실이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일본 경제보복#수출규제#wto 제소#화이트리스트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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