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의 한 한정식집에서 열린 서울대 82학번 출신 정치·경제계 인사 모임에선 이런 말들이 오갔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문재인 정권의 무능 무책임을 온몸으로 상징’ ‘역대 최악의 민정수석’ ‘무차별 공포정치 발주처’ 등 맹공을 퍼붓는 데에 대한 얘기였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한 참석자는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원이와 국이가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걸 봐온 동창들에겐 정말 어색한 광경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 “우리 막내 조국, 입 큰 개구리”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들은 나 원내대표와 조 장관이 대학 시절에는 가깝게 지냈다고 기억했다. 1963년생인 법대 동기들은 두 살 어린 1965년생인 조 장관을 ‘우리 막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기들에 따르면 조 장관과 나 원내대표는 대학 시절 각각 남학생과 여학생을 대표하는 뛰어난 외모로도 인기가 많았다.
나 원내대표와 조 장관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멀어졌지만 공개적으로 대학 시절 추억을 언급한 적도 있다. 나 원내대표는 2012년 한 방송에서 조 장관의 대학 시절 별명이 ‘입 큰 개구리’였다고 소개했다. 조 장관은 2010년 저서 ‘진보집권플랜’에서 나 원내대표에 대해 “저와는 생각이 다른 친구였지만 노트 필기를 잘해 노트를 빌려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82학번에는 정치·경제·관료계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정치계에는 무소속 원희룡 제주도지사,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 한국당 송언석 의원,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 강석훈 전 새누리당 의원, 조해진 전 의원 등이 있다. 특히 김한정 의원은 조 장관과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경제계에는 증권사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한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김신 SK증권 대표, 변재상 미래에셋대우 대표 등이 있다. 한국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화제가 됐던 서영경 대한상공회의소 원장,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도 서울대 82학번이다. 관계에는 최상목 전 기획재정부 1차관,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김철주 전 대통령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있다. 학계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이 꼽힌다.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도 서울대 82학번이다.
각계에 포진한 서울대 82학번들은 국회의원과 언론인, 경제인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꾸려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조 장관은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대 82학번 금융인 모임에선 2017년 대선 직후 조 장관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되자 동기인 국회의원을 통해 ‘취임 축하 겸 식사 한번 같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조 장관이 ‘때가 아닌 것 같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 조국 두고 82학번끼리 ‘친구야’ 설전
서울대 82학번 수석 입학생은 학력고사 수석이었던 원희룡 지사였다. 원 지사는 당시 뭘 하든 주목받았다. 원 지사가 법대 2학년 때 공법학과(헌법 형법 행정법 등)와 사법학과(민법 상법 등)의 갈림길에서 공법학과를 선택하자 상위권 학생 상당수가 가세했다. 그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파가 선호해온 사법학과에 사람이 몰렸던 흐름이 달라진 것이다. ‘시국이 이런데 고시 공부나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분위기도 학생들을 공법학과로 이끌었다.
원 지사는 2012년 1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친구로 조 장관과 함께 출연했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당시 원 지사는 조 장관을 두고 “너무 바른생활 소년”이라고 치켜세웠다. 조 장관은 2014년 페이스북에서 원 지사를 향해 “말이 통하는 대학 동기”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원 지사는 유튜브 채널 ‘원더풀TV’에서 “친구 조국아, 그만하자”고 일갈했다. 원 지사는 “친구로서 조국 후보에게 권한다. 더는 동시대의 386을 욕보이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9일 조 장관이 공식 임명되자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끝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조국을 임명했다”며 “상식과 보편적 정의를 버리고 분열과 편 가르기를 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구 간 쓴소리는 조 장관이 먼저 했다. 조 장관은 2010년 저서 진보집권플랜에서 원 지사에 대해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나 변호사가 아닌 검사의 길을 택했을 때 정치의 길을 걷겠구나 직감했다”고 썼다. 원 지사는 1992년 사시에 수석 합격해 검사가 됐고 2000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됐다. 조 장관은 원 지사의 한나라당 입당을 두고 “민주당 내에선 경쟁재가 많아 자신의 상품성이 약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386’ 맏형인 ‘똥파리’
서울대 82학번은 ‘똥파리’라고 불렸다. 앞선 학번들이 붙여준 별칭이다. ‘82’를 소리 내 읽으면 ‘파리’인 데다 숫자가 많아 떼 지어 몰려다닌다고 해 똥파리가 됐다. 서울대는 그해 넘쳐난 신입생으로 학교 시설이 부족할 정도였다. 1981년 졸업정원제가 시행돼 입학 정원이 늘어난 데다 서울대 입학 정원이 미달되면서 다음 해인 82학번 신입생이 대거 늘어난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1980년 7월 30일 학교 수업만 들어도 대학 입학에 문제가 없게 하겠다면서 대학별 본고사를 폐지하고 대학 입학 정원을 졸업 정원 대비 130%로 늘렸다. 7·30 조치로 81학번부터 대학생 수가 크게 늘었다. 서울대 법대는 280명이던 정원이 360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81학번이 서울대에 입학할 때 초유의 입학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1981학년도 모집 정원이 6530명이었는데 합격자 수가 5292명에 불과했다. 28개 모집단위 중 정원을 채운 곳은 6곳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82학번은 81학번에 비해 수가 확연히 많았다. 학과에 따라서는 82학번이 81학번보다 2배가량 많기도 했다. 2, 3학년을 다 합쳐도 1학년보다 학생 수가 적은 학과도 있었다. 서울대 82학번 국회의원은 “신입생 인원이 전년도에 비해 확 늘다 보니 참 다양한 스타일이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수가 많다 보니 82학번은 일종의 세력을 형성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덧붙여 김일성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첫 학번이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막내면서 386운동권 맏형 격이기도 하다.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 이후 지하서클을 해산하고 학생회를 재건하거나 공개적인 투쟁 조직을 만드는 데도 이들이 앞장섰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거침없이 행동한 것이다.
82학번은 본격적인 ‘평준화 세대’다. 고교평준화는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 대구·인천·광주, 1979년 대전·전주·마산·청주·수원·춘천·제주로 확대됐다.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인 한 대기업 임원은 “폐쇄적 의식 없이 스스럼없이 누구와도 어울리는 문화를 가진 세대”라고 했다. 조직화의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네트워크는 개인화한 현재의 청년 세대가 가지지 못한 자산이다. 82학번은 정치권이건, 시민사회건, 기업이건 한 다리만 건너면 ‘친구’인 수평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은 한 세대의 운동가 집단 전체가 공장에 진출해 ‘노동자 군대’를 만들어 그 전위가 되고자 했다. 고교평준화와 졸업정원제가 이 세대의 신분적 위계를 없애고 인적 자원을 배가했다면 광주의 경험은 대정부 혹은 반체제 투쟁 의식에 불을 지폈다”고 했다. 그 선두에 서 있던 게 82학번 ‘똥파리’들인 것이다.
○ 조국 사노맹 활동, 동기 사이에서 다양한 평가
조 장관은 1991년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시절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서 활동한 전력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사노맹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에서 한 글자씩 따 ND(민족민주)라고 불리기도 했다. 북한을 비판하면서 ‘남한 내 사회주의혁명 지도부’를 자처했다. 당시 조 장관은 ‘최선생’ ‘고선생’ ‘정성민’ 등의 가명으로 활동하며 사노맹 기관지 ‘우리사상 2호’ 제작과 판매를 주도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조 장관은 후보자 시절 “장관 후보자가 되고 나니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저의 1991년 활동이 2019년에 소환됐다”며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저는 28년 전 그 활동을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다.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인사청문회에서는 “헌법의 틀 아래서 사회주의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도 말했다.
조 장관의 사노맹 활동을 두고 서울대 82학번 동기들 사이에선 여러 평가가 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조 장관의 사노맹 활동 전력을 거론하며 “대단히 위험한 후보”라면서 “여전히 사회주의를 얘기하고 있는 조국이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노동운동을 한 서울대 공대 82학번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조국이 사노맹 활동을 할 때는 소련·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던 시기”라며 “당시 우리는 그 친구들을 세상 바뀌는 것도 모르는 지진아 취급했다”고 말했다.
반면 조 장관이 사노맹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도 사노맹 이력을 훈장처럼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는 “조국 그 친구는 ‘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경력을 봐도 알겠지만 운동한 사람이 교수가 되는 코스를 그렇게 쉬지 않고 밟을 수 없다”며 “조국은 법대 내에서 운동권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반(半)운동권이었다”고 회고했다. “조국의 사노맹 활동은 사노맹 교재 만들고 책 읽은 정도라 사실 별게 없다”며 “사노맹 이력이 과장돼 알려지면서 오히려 훈장이 된 격”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82학번은 유신 독재 교과서로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현장을 외웠다. 권위주의적 폭압과 대결하면서 평등주의, 아래로부터의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채택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로 기억되던 시절 사회에 진출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전두환 정권을 몰아내는 역사적 과업을 해냈다는 충만감으로 정신적으로 자기가 레닌이고, 자기가 김일성이고, 자기가 혁명가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며 “앞으로 이런 세대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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