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구분하는 금단의 땅이 생겼다.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북 각각 2km씩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한 것. 그러나 휴전 이후 최근까지 DMZ 주변에는 ‘비무장’이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가장 많은 화력이 집중 배치돼 서로를 경계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4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9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이후 DMZ, 특히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는 남북을 연결하는 새 길이 뚫렸다.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에서 유해 발굴이 시작됐고, 남북 군사분계선까지 매설돼 있던 지뢰를 제거한 뒤 차량 운행이 가능할 정도로 새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길 주변을 ‘평화의 길’로 명명하고 올해 6월부터 우리 국민에게 방문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철원 DMZ 평화의 길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다. 특히 철원 DMZ 평화의 길은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와 남북을 경유해 흐르는 역곡천, 그리고 주변 평야가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휴전 이후 최초로 비무장지대에서 시범적으로 남북 공동 유해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화살머리고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철원 DMZ 평화의 길 방문자는 온라인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결정한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시간대에 신청을 받은 뒤 각 20명씩 인원을 선발해 평화의 길을 직접 걷거나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DMZ”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6일 오전에는 철원 DMZ 평화의 길에 7명의 소수 인원만 다녀갔다. 서울 화곡동에 거주하는 강용석(52) 씨는 11월 입대를 앞둔 아들 민구(21) 군과 평화의 길을 찾았다.
“대학생 때 GP(감시초소)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돌아보니 정말 고요하고 평화롭더군요. 푸른 하늘에 간간이 새소리만 들렸어요.”
강씨는 “남방한계선 철책에는 감시카메라가 여러 대 설치돼 있어 초병들의 경계 근무를 대신하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남북이 여전히 대치하는 상황이지만, 이곳 평화의 길만큼은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이날 오후 철원 DMZ 평화의 길 방문을 위해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60대 후반 여성은 “못 가보던 곳에 새 길이 열렸다 카길래 우째 생겼나 보러 안 왔나”라며 평화의 길 방문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경기 수원시에서 왔다는 70대 부부는 “오후 조는 19명”이라며 “1시 30분까지 백마고지의 전적비 앞에 모이라 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백마고지 전적비 부근에서 근무하는 한 병사는 “평화의 길과 백마고지를 찾아오는 국민이 크게 늘었다”며 “지난달(8월)에는 1700명 정도가 방문했다”고 귀띔했다.
금단의 땅으로 여겨지던 DMZ에 새 길이 뚫리자 전국 경향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북 분단과 남북 대치 현장을 둘러보는 안보관광 위주였다면 이제는 평화의 길을 가보려는 관광객이 생겨났다는 점이 달라진 풍경이다.
부친의 고향이 철원평야 너머 평강고원이라는 한 어르신은 대구포와 정종으로 조촐한 차례상을 차려놓고 북녘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사이 친구들과 함께 백마고지를 찾은 한 노인은 과거 이 부근에서 군 생활한 경험을 회고하며 안보에 관한 우려의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내가 1사단 600고지에서 근무할 때는 지뢰가 하도 많아 바로 옆에 밤이 떨어져 있어도 주울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군사분계선까지 지뢰를 없애고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길을 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그런데 그 길로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우리 군이 막아낼 수는 있겠나.”
서울 마포구에서 왔다는 40대 초반 커플도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남북은 지금처럼 각자 따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지난해는 잘 지내는 듯했지만, 올해는 어떤가요. 미사일을 쏘면서 뒤통수치는 것이 오히려 남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나요.”
철원 DMZ 평화의 길은 아직까지는 추첨을 통해 당첨된 소수만 직접 방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은 철원 노동당사 앞에 자리한 소이산에 올라 평화의 길을 직접 걷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철원평야에 솟아 있는 해발 362m 높이의 소이산 정상.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는 제1로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 산 정상에서는 백마고지와 김일성고지, 철원역, 제2 땅굴, 노동당사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철원 DMZ 평화의 길도 멀리서 살펴볼 수 있다. 이날 이 산 정상에 올라 보니 너른 철원평야 너머 북녘으로 수풀이 울창한 띠 모양의 DMZ가 66년간 이어진 분단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국가 지질공원 해설사로 활동하는 서양숙 해설사는 “소이산 정상에서는 남북 분단의 생생한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남측 철원평야와 북측 평강고원, 김일성고지와 백마고지, 산명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군부대 나가면서 경제는 더 어려워져”
외지인이 즐겨 찾는 DMZ 평화의 길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백마고지 전적비 부근은 평화에 대한 기대와 안보에 대한 우려가 교차했다. 하지만 정작 DMZ 주변에 거주하는 철원 주민은 ‘먹고사니즘’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분위기만 떠 있지, 실속은 하나도 없어. 지난해부터 문 닫는 상가가 계속 생겨나고 있거든. 평화? 좋지. 그런데 평화가 어느 세월에 밥 먹여줄까.”
동송읍 전통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남북군사합의 1주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심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옷 수선집을 운영하는 다른 상인도 “평화 분위기 탓에 여기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지역경제에서 큰 몫을 차지하던 군부대가 빠져나가 타격이 크다는 얘기였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다른 상인도 비슷한 말을 꺼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좋고, 군인들이 나가는 것도 다 좋아요. 그러면 군부대 나간 자리에 공장이나 산업단지라도 조성해줘야 이곳 사람들도 먹고살 거 아니에요. 아무 대책 없이 평화랍시고 군부대만 빼내가면 여기 사람들은 뭘 먹고살라는 말이래요.”
상인회에서 일하는 김성헌(40) 씨는 “과거에 비해 접경지역의 긴장 상황이 누그러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지역경제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폐업한 상가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철원평야에서 농사짓는 농민들도 평화의 길 조성 이후 관광객 편의를 위해 농로를 우회해야 하는 등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최춘석 철원읍 대마1리 이장은 “정부가 필요하니 하는 일이겠지만 지역 주민과 협의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의 길 조성 때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바람에 주민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전국 각지에서 철원까지 왔는데 평화의 길만 휙 돌아보고 가면 여기 주민의 삶에는 보탬이 전혀 안 돼요. 접경지 마을까지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평화의 길을 조성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철원군과 서남쪽으로 맞닿아 있는 경기 연천군 역시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마주한 대표적인 접경지역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남북 해빙 무드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다가도 안보 불안감을 드러냈다.
인터뷰 | 강세용 철원군의회 부의장 “평화 이벤트 말고 주민 생계 도움 되는 기반시설 확충해야”
강세용 철원군의회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평화가 일회성 이벤트 위주로 흐르고 있다”며 “한바탕 먹고 노는 행사에 쏟아부을 예산을 아껴 지역경제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된 지 1년이 됐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평화라는 말이 들어가는 문화예술 공연은 지난 1년 동안 확실히 많아졌다. 그런데 평화 행사를 많이 한다고 주민 생활이 나아질 수 있을까. 차라리 그 돈으로 철원군에 기반시설 하나라도 더 짓는 게 주민들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남북 대치 국면이 평화 무드로 대체되면서 주민들 삶에 안정이 찾아오지 않았나.
“실질적 평화는 아직 안 왔는데, 감상적 평화 분위기에 취해 있다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어른이 많다. 북한이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르는데 GP를 성급하게 철거했다고 걱정하는 어르신도 꽤 된다. 또 국방개혁계획에 따라 군부대를 이전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지역 주민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군부대 이전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도 크다.”
강 부의장은 “박근혜 정부 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경원선 복원사업의 경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사업에 우선순위가 밀려서인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평화 좋죠. 그런데 결과물 없이 말로만 하는 평화는 주민들 삶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평화보다 생존이 우선이에요. 철원 곳곳을 둘러보세요. 상가 공실률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평화가 찾아왔다고 강조하는데 주민들은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이에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중앙정부가 철원 같은 접경지에 교부세를 더 주든 해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민들 수가 적다고 정부가 정책적인 배려도 외면하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합니다.”
“북에 끌려다니는 평화 원치 않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역 앞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대화에 나섰다가도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는 북한에 우리 정부가 끌려다니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우리 자존심까지 구겨가면서 북한과 대화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대광리역 앞에서 잡화상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적극적인 남북대화를 주문했다.
“앞으로도 남북대화를 계속해가야죠. 언제까지 대치를 계속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그렇다고 전쟁을 할 수도 없으니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남북대화에 대한 엇갈린 주민 평가와 달리 연천군에는 지난해 남북 해빙 무드 조성 이후 귀농과 귀촌을 고민하는 외지인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연천군청에 근무하는 문모 씨는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연천군으로 귀농과 귀촌을 문의하는 전화가 크게 늘었다”며 “문의뿐 아니라 빈집을 사거나 세를 얻어 실제로 이주하는 인구도 제법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농지 매입이나 개발 인허가 문의와 신청 건수가 크게 늘어난 점도 남북관계가 개선된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남방한계선에 가까운 백학면의 일부 주민은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만난 70대 노인 3명은 “전방을 군인들 대신 폐쇄회로(CC)TV가 지키고 있다”며 “집에 쳐들어온 도둑을 잡으려면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지, 카메라가 도둑을 어떻게 제압할 수 있느냐”며 혀를 찼다.
한 어르신은 “고모부도 죽이고, 이복형도 죽인 김정은 말을 어떻게 믿고 GP를 철거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대로 그대로 놔뒀다가는 나라가 큰 위기에 빠질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반대하는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는 것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맘대로 할 것 같다”며 “국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10월 3일 광화문광장으로 나가 조국 반대, 문재인 반대를 외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제안한 10월 3일 광화문 개천절 집회 참석 의사를 밝힌 것이다. 곁에 있던 두 노인도 “함께 갈 것”이라고 거들었다. 안보 우려 때문일까, 아니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한 반발 때문일까. 백학면 노인들은 문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철원군과 연천군 들녘은 추수가 한창이었다. 결실의 계절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 지난해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평화는 대한민국 국민, 최소한 접경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 피부에 와 닿는 결실을 맺지 못한 듯했다. 한편에선 평화 무드에 따른 안보 공백을 우려했고, 다른 한편에선 감성적 평화보다 실질적 혜택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2019년 9월 DMZ 접경지역은 비록 평화의 길은 뚫렸지만 여전히 평화래불사평화 상태라 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