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해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조미(북-미) 관계의 긍정적 발전이 가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지 13시간 만인 2일 오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발사체 도발에 나섰다. 핵기습 타격이 가능한 SLBM을 실무협상 직전에 선보이면서, 비핵화에 나설 테니 체제 보장이나 제재 완화 등 제값을 내놓으라고 워싱턴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앞선 단거리 발사체들을 용인했던 미국은 SLBM 도발에도 정면 대응을 삼가며 어렵게 살린 협상 불씨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 “SLBM도 있다” 몸값 높이는 北
올해 북한은 5월 4일 첫 도발 이후 9월 10일까지 10차례에 걸쳐 단거리 발사체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가깝게는 9월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남 단거리 발사체로는 워싱턴이 움직이지 않자 협상 재개를 코앞에 두고 SLBM까지 꺼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날 북한에 이어 미국도 실무협상 재개를 공식화하자 기다렸다는 듯 13시간 만에 도발에 나선 것. 정부 당국자는 “결국 실무협상을 눈앞에 두고 협상력을 급히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3차 북-미 정상회담에 트럼프 대통령을 빨리 끌어들이려고 SLBM 발사라는 도박을 벌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이후 가장 사거리가 긴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쏘면서 워싱턴에 “정상회담까지 너무 시간 끌지 말라. 톱다운으로 가자”는 메시지를 날렸다는 분석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실무진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협이다’라고 보고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하루빨리 (회담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충격 요법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가이익센터(CNI) 한국담당 국장은 동아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더 많은 미사일 발사는 물론 핵실험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워싱턴에 분명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SLBM을 실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몸값 높이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우 센터장은 “북한이 도발을 통해 이번 협상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비핵화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했던 것과 같은 ‘군축 협상’을 하는 자리라는 점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다”고 평가했다. ○ SLBM 도발에도 일단 참는 美
미국은 실무협상 날짜를 받아놓고 SLBM이란 ‘재’를 뿌린 북한에 대해 정면 대응을 삼가는 기류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일 성명을 통해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도 이날 동아일보의 질의에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우리의 지역 내 동맹들과 협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앞선 단거리 도발 때와 비슷하게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는 분위기다.
북한의 SLBM 능력을 깎아내리는 기류도 감지된다. 미국 CNN은 2일 정통한 미 당국자의 설명을 인용해 이번 미사일을 SLBM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지만 잠수함에서 발사된 건 아니라는 게 미국 당국의 평가라고 보도했다. 한 정부 소식통도 “아직 북한 잠수함의 활동 영역이 동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북한 SLBM이 아직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잠수함의 작전 반경이 아직 한반도 안팎인 만큼, 태평양을 통해 미 본토 인근해까지 와서 SLBM을 발사할 수준의 잠항 및 핵운용 능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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