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더는 참을수 없어” 서울도심 꽉 채운 시민들 목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일 2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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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넘은 박사도 논문 한 편 쓰려면 몇 달이 걸립니다. 고등학생이 2주 인턴활동으로 제1저자가 된 게 말이 됩니까?”

3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 30대 의사 박모 씨는 30대 아내 김모 씨와 함께 두 아이의 유모차를 각각 끌고 이곳에 왔다. 박 씨는 “나도 지금 의학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제1저자는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등재돼야 한다. (조 장관 딸이) 영어 번역만으로 제1저자가 됐다는 건 명백한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했다. 공학박사인 아내 김 씨도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 5년간 밤늦도록 실험하고 공부했다”며 “고등학생이 2주간 논문을 쓰고 제1저자가 됐다는 것에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 같은 엄마 둬서 미안하다” 자녀 손잡고 나온 부모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조 장관을 향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60대 부모와 함께 집회 현장을 찾은 30대 남성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도 40번 넘게 참여했을 만큼 나는 ‘촛불시민’이었는데 (조 장관과 관련된) 이번 사태를 보고 참을 수 없어 나왔다”며 “1000명이 넘는 변호사, 1만 명이 넘는 대학 교수들이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민의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조국이 아니라서 미안하다’는 부모들의 자조 섞인 분노도 터져 나왔다. 딸 장주희 씨(24)와 함께 집회에 참가한 이윤경 씨(53·여)는 “난 권력도 돈도 없어 딸의 취업 준비에 도움을 못줘 요즘 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며 “털어도 먼지 안 나오게, 정직하게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서울대에 다니는 아들을 둔 오모 씨(52)는 “우리 아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봉사활동 3시간 30분을 하고도 1시간 단위로 인정이 돼 3시간만 봉사시간으로 인정받았다”며 “우리 같은 서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조 장관 가족은 편법으로 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나왔다”는 교사들도 있었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고교 영어교사인 이소희 씨(36·여)는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닌 조 장관 자녀가 누린 ‘품앗이 인턴’은 일반고 학생들에게는 기회조차 없다”며 “조 장관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인턴이었다고 했지만 그건 교사들도 알기 힘든 정보”라고 했다.

●“정의는 어디갔냐” 촛불 든 대학생들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조 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전국대학생연합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지난달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에서 각각 열린 조 장관 퇴진 촉구 촛불집회가 대학 연합 집회 형식으로 처음 열린 것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단국대 등 40개 대학이 참여한 이날 집회에는 500여 명(조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대학생들은 이들은 ‘조로남불 그만하고 자진해서 사퇴하라’, ‘금수저는 격려장학 흙수저는 학사경고’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과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양손에 들고 “평등 공정 외치더니 정의는 어디 갔냐” 등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가한 부산대 4학년 황모 씨(25)는 “우리 같은 흙수저는 죽어라 공부해도 장학금 받기도 힘든데 조국의 딸은 방안에서 해외봉사와 인턴을 했다고 한다. 기득권 세대가 쌓아 놓은 인맥문화를 우리가 없애야 한다”고 했다. 단국대 학생은 “특권을 이용해 편법을 쓴 사람이 법치국가에서 법을 다스리고 국민들에게 법을 준수하도록 지시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국대학생연합이 온라인에서 진행하고 있는 ‘조국 퇴진을 위한 전국대학생 서명’에는 3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참여자가 800명을 넘었다.

●자유한국당 “서초동 이긴 광화문광장”

자유한국당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규탄대회’에서 문재인 정권이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 ‘친북 수구 위선 좌파’라며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한국당은 광화문광장부터 서울역광장까지 2.5km 구간의 도로를 가득 채운 범보수단체 인파가 300만 명이라며 ‘서초동 집회 200만 명’을 이겼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검은 줄무늬 셔츠와 연갈색 바지를 입고 세종문화회관 앞 연설대에 올라 “대통령이 요새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며 “대통령이 조국에게 검찰 개혁하라고 하고 조국이 인사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는 건 검찰 수사를 마비시키고 수사팀을 바꿔서 자기 비리를 덮으려는 것이다, 검찰 개혁은 가짜”라고 말했다.

빨간 조끼를 입고 연설대에 오른 나경원 원내대표는 “싸구려 감성팔이에 국민이 안 속으니까 홍위병을 풀어 200만 운운한다”며 “광화문광장은 서초동 대검찰청 도로보다 훨씬 넓다”며 “그들이 200만이면 우리는 2000만”이라고 했다.

한국당 원외 인사들이 참석한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운동본부’ 집회에서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조폭 같은 집단의 수괴”라며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탄핵 결정문을 낭독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요즘 조국의 눈동자에서 덫에 걸린 야생동물의 죽음을 예감하는 초조한 눈동자를 본다. 왜 이 공포에 질린 초조한 한 마리 동물을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기분상해야 하느냐”며 “이런 자에게 검찰 개혁의 칼을 준 최악의 대통령 독재자 문재인을 헌정유린의 죄악으로 파면한다”고 외쳤다.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조동주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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