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 대폭 축소에 이어 두 번째 검찰 개혁 방안으로 피의자 공개 출석 폐지를 지시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행보에는 이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한 검찰 고위 간부가 전했다. 청와대의 검찰 개혁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조국 법무부 장관 의혹에 대한 수사가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오해받는 구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 조 장관-윤 총장, 개혁 주도권 두고 신경전
4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윤 총장은 최근 참모들에게 “검찰 개혁은 원래 계획했던 당연한 일을 하는 것” “개혁은 검찰 수장의 판단과 책임하에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검찰 주도의 과감한 개혁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내부 직원들에게 오히려 “검찰 개혁은 외부 위원회가 아닌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며 검찰이 즉각 바꿀 수 있는 부분부터 고칠 것을 주문했다. 법무부가 주도하는 수사공보준칙 개정 논의에 시일이 걸리는 것을 감안해 총장 지시로 일선 수사 현장에 즉각 반영되는 ‘공개소환’ 폐지를 추가 개혁안으로 내밀었다. 윤 총장은 이 같은 사안을 법무부에 전달했지만 조 장관과 사전 협의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 방침도 대검이 정할 예정이다.
윤 총장은 올 7월 취임사에서 “국민 말씀을 경청하고, 국민 사정을 살피고, 국민 생각에 공감하는 자세로 법집행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서초동 일대의 검찰 개혁 촉구 집회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대검은 1일 특수부를 축소하고, 외부기관에 파견된 검사들을 복귀시켜 민생범죄수사에 투입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1차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윤 총장은 특수부의 단계적 축소를 주장한 대검 간부들에게 “아니다. 확 줄이라”며 7곳 중 4곳을 없애고, 3곳만 남기는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러나 조 장관은 2일 “검찰 개혁의 최종 결정 주체는 법무부”라고 했다. 이날 법무부 간부 회의에서 “특수부 폐지는 대통령령 개정이 필요하고, 파견 검사 복귀는 법무장관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개혁 주도권이 조 장관 본인에게 있다고 피력한 것이다. 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는 4일 윤 총장이 특수부 존속 검찰청으로 지정한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 등 직접수사 부서의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 규모를 줄이라는 취지다. 조 장관은 4일 출근길에선 “검찰 개혁은 제 소명”이라며 법무부 주도의 속도감 있는 개혁을 예고했다.
○ 일각 “조국 장관에 비공개 출석 명분 제공”
1994년 이후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이 검찰에 소환될 때는 포토라인에 서 왔다. 2010년 시행된 법무부 수사공보준칙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자산 1조 원 이상 기업 대표 등을 공적 인물로 분류해 공개 출석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현직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대기업 오너 등이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사진 찍히거나 간단한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피의자 망신 주기’ ‘사실상 유죄 낙인’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윤 총장이 수사공보준칙 개정 전까지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번 포토라인 폐지로 가족 관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앞둔 조 장관이 당장 혜택을 받게 됐다. 국회 파행을 가져온 패스트트랙 사건의 고소 고발 당사자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도 비공개 출석을 한 뒤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윤 총장이 조 장관에게 비공개 출석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고, 조사를 회피할 이유를 없앤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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