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리딩외의 콘퍼런스 시설인 ‘빌라 엘프비크 스트란드’.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휴양시설인 이곳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열렸다. 영하 1도의 날씨에도 한국 미국 일본 스웨덴 등 각국 취재진 수십 명이 협상장과 불과 6km 떨어진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을 분주히 오갔다. 취재진은 양측 협상 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취재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펼쳤다.
김 대사는 오전 9시 40분경 북한대사관을 나섰다. 그는 ‘회의 결과를 낙관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두고 봅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협상장에 먼저 도착한 비건 대표도 김 대사를 웃으며 맞이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기대감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약 2시간 후 달라졌다. 낮 12시 김 대사를 비롯한 북한 대표단은 검은 밴을 타고 회담장을 나와 북한대사관으로 돌아갔다. 다시 2시간 20분이 지난 뒤 회담장으로 돌아왔지만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김 대사는 ‘왜 중간에 나왔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회담장을 떠난 김 대사는 이날 오후 6시 32분경 북한대사관에서 회담 결렬 설명을 발표했다. 북한 대표단은 스톡홀름에 도착한 3일부터 이날까지 각국 취재진의 취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저녁 북측 차석대표인 권정근 전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대사관에 도착하자마자 담장 안에서 큰소리로 “성명을 발표할 테니 기다리시라우”라고 말했다. 마치 결렬 성명을 준비한 듯이 7분 만에 서너 장 분량의 종이를 들고 등장한 김 대사가 굳은 얼굴로 성명서를 낭독했다.
김 대사는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에 매달린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마주 앉아도 대화에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 대사가 말하면 곧바로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했다. 김 대사 옆에 선 권 차석대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각국 취재진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다.
약 12분간의 성명 발표가 끝난 후 북한 대표단은 이례적으로 취재진에 “질문을 3개 받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미국에서 체제 보장에 대해 긍정적 의사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느냐” 등을 물었지만 ‘미국을 탓하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미국 대표단은 협상 결렬 후에도 곧바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비건 대표는 스톡홀름의 유명 식당에서 와인과 피자 등을 즐기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성명 발표 후 약 3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10시경 “우리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논의를 했다”며 북한의 주장을 반박했다.
북한 대표단은 출국 직전까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6일 오전 10시 50분경 출국을 위해 북한대사관을 나서던 김 대사는 ‘2주 후 스웨덴에서 미국과 다시 만나느냐’는 질문에 “미국 측에 물어보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6일 낮 12시 40분 비행기로 스톡홀름 공항을 떠난 김 대사 일행은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해 7일 에어차이나 편으로 오전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한다. 김 대사 일행은 이날 낮 12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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