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때 수많은 북한 사람을 살린 고마운 음식입니다. 그나마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한 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지요.”
수도권에서 인조고기밥 식당을 운영하는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 탈북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후반 경제위기 당시를 시기를 말합니다.
‘언박싱평양’ 3화는 이 당시 고기 요리는 구경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북한 주민들에게 고마운 단백질을 공급해 준 북한 식재료 ‘인조고기’입니다. 인조고기는 콩깻묵(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을 롤러로 얇게 밀어 건조시킨 건데요. 옅은 갈색을 띠고, 손가락 두 개 너비입니다. 값싼 어포(魚脯) 느낌도 납니다. 맛은 묘사하기 어렵습니다. 어포 씹는 느낌인데 생선이나 육류 맛은 안 납니다. 달거나 감칠맛이 없으며 찝찌름한 맛이 입안에 남습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 여성이 운영하는 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탈북 여성은 “북한에서 직접 들여온 인조고기다. 한국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인조고기 수입 가격은 1㎏에 한국 돈 2만 원이라고 합니다. 인조고기를 기름에 볶거나 양념에 무쳐 먹기도 한다네요.
인조고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욕구에서 비롯한 식재료입니다. 잔혹하던 시절, 삶을 버티게 해준 음식이 그리워 탈북한 후에도 인조고기, 인조고기밥 양념을 중국을 통해 구입해 먹는 탈북민이 적지 않습니다. 탈북민 이미란(45) 씨는 “맛이 그리워서이기도 하고 기어이 버텨낸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탈북민이 특히 그리워하는 게 인조고기에 밥을 싸서 먹는 ‘인조고기밥’이란 음식입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이 음식은 인조고기를 10㎝ 남짓한 길이로 잘라 삶은 후 그 안에 밥을 넣고 간장, 젓갈,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얹은 것입니다. 북한 출신 주승현 인천대 교수는 “한국에 와서 처음 먹어봤는데 중독성이 있다.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라고 말합니다.
최근 북한 경제가 개선되면서 인조고기밥은 주식이라기보다는 장마당과 길거리에서 파는 ‘대표 간식’이 됐습니다. 한국의 떡볶이, 어묵 같은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를 끕니다. 지금은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가 아니라 온전한 콩으로 인조고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한 탈북 대학생은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인조고기밥 매운 양념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 안에 침이 고여요. 하굣길 학교 앞매대애서 인조고기밥을 간식으로 사먹곤 했습니다. 인조고기밥이 먹고 싶어 수업 끝날 시간만 기다렸죠.”
북한에서 만든 인조고기를 직접 먹어보며 청년들과 이야기 나누는 ‘언박싱평양’ 3화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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