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기 6대 무더기 침범… 조기경보기-폭격기-전투기 ‘세트’
울릉도~제주~태안 상공 들락날락… 23일 한러 군사위원회 앞두고
KADIZ 무력화 기선제압 노린듯… 외교부, 러 참사관 초치 유감표명
러시아 군용기들의 22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 사태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기존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무력시위라는 분석이 많다. 7월 23일 독도 영공을 침범한 자국 조기경보기를 경고사격으로 쫓아 보낸 한국군에 대한 ‘노골적 경고’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패키지 형태’의 공군 전력을 동원해 KADIZ를 무더기로 휘젓고 다닌 것에 군은 주목하고 있다. 독도 영공 침범 때를 포함해 그동안 KADIZ를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들은 폭격기와 조기경보기 등 대개 1, 2개 기종에 그쳤고, 동원하는 대수도 2, 3대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 러시아는 TU-95 장거리폭격기(2대)와 A-50 조기경보기(1대)를 비롯해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SU-27(플랭커·3대)까지 3종의 주력 군용기 6대를 투입했다. 7월 KADIZ 침범 때는 TU-95 장거리폭격기, A-50 조기경보기가 동원됐고 영공 침범은 조기경보기가 했다. 군 관계자는 “사실상 공군의 전략·전술적 작전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핵심전력을 총동원한 것”이라며 “이런 사례는 최근 몇 년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SU-27은 미 공군이 운용 중인 F-15 전투기와 맞먹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군 관계자는 “러시아가 SU-27을 KADIZ에 투입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우리 공군이 F-15K로 대응할 걸로 예상하고, 맞대응 전력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군은 SU-27이 경고통신을 무시하고, KADIZ를 잇달아 침범하자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KADIZ 내 비행경로도 예사롭지 않다. TU-95 폭격기 2대는 이날 오전 10시 41분경 SU-27 전투기의 엄호 속에 울릉도 북쪽의 KADIZ로 무단진입한 후 경북 포항과 제주도, 이어도 상공의 KADIZ를 들락거리면서 서해 태안 인근 상공까지 북상했다. 이후 같은 경로를 거슬러 울릉도 동북방에서 또 다른 SU-27 2대의 호위를 받으며 빠져나갈 때까지 130여 분간 KADIZ를 헤집고 다녔다. 우리 군이 수십 차례 경고 통신을 보냈지만 러시아 군용기들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러시아 군용기가 한반도의 동서남해를 훑어내듯이 비행한 것은 이 구역이 자국의 정찰 및 훈련 구역인 만큼 KADIZ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군용기들이 23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러 합동군사위원회를 하루 앞두고 KADIZ를 겨냥한 고강도 무력시위를 강행한 것도 이런 정황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23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이번 회의는 KADIZ 무단진입과 영공침범 등을 방지하는 양국 간 ‘핫라인(직통전화)’ 설치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군 당국자는 “한국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러시아가 회의 개최 전날을 골라 KADIZ 무력화를 시도한 것은 자국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기선제압 차원”이라고 말했다. 군은 이 회의에서 러시아 측에 강력한 항의와 유감의 뜻을 전달하고, 양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KADIZ 침범 방지대책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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