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타 면제사업예산 28조
영유아 보육료 지원-노인일자리 등 복지예산중 중복우려 사업도 13개
국회서 ‘총선용 퍼주기’ 논란일 듯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을 대폭 늘린 데 대해 경제성과 정책성만 따지다 보면 지방의 중점추진사업과 복지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낙후지역 개발 사업 등이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번번이 예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돼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내년 예산안에 일시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오해를 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한 번 시작되면 중간에 예산 지원을 중단하기 어려운 데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에도 유지비용을 계속 투입해야 해 두고두고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일례로 김천∼거제를 잇는 남부내륙 고속철도(KTX) 사업은 이전에 이미 예타에서 탈락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면제사업으로 지정됐다. 남부내륙철도는 2006년부터 추진됐지만 2012년에는 사업성 부족으로, 2017년에는 경제성 부족으로 예타에서 탈락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총 사업비는 4조6562억 원이다. 내년 예산안에는 설계비로 150억 원이 반영됐다.
이번 예타 면제 사업 중 절반 이상은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예타 면제사업 43개 중 26개는 사업에 대한 적정성 검토조차 끝나지 않았는데도 예산을 배정했다.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은 예타 조사를 면제하더라도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실시한 뒤 예산안에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예타를 면제하더라도 예산 낭비를 막자는 취지다.
적정성 검토 절차를 마친 사업 중에서는 검토 과정에서 나온 사업비보다 예산을 더 많이 배정한 사례도 있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은 1조2807억 원의 사업비가 적정하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예산안에는 이보다 1711억 원 많은 1조4518억 원이 총사업비로 반영됐다. 상용차산업 혁신성장 사업이나 지역특화산업육성 플러스 사업도 각각 352억 원, 60억 원이 더 반영됐다. 예산정책처는 “국가 정책적 필요에 의한 예타 면제사업은 가급적 최소화할 필요가 있지만 오히려 규모가 크게 증가해 예타의 실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처는 내년 복지 예산사업 중 지방자치단체 등이 추진하는 사업과 중복될 우려가 있지만 걸러지지 않은 예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3조4055억 원 규모의 영유아보육료 지원사업이나 1조2000억 원 규모의 노인일자리 사업 등 굵직한 사업이 대표적이다. 예산정책처는 “지자체 등과 협의가 끝나지 않아 유사, 중복 문제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중복이 우려되는데도 검토를 마치지 못한 사업이 올 10월 기준 13개에 이른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확장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며 “예타 면제 등으로 무분별하게 쓰이는 예산이 있다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엄밀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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