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은 자신이 제시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기금 조성 방안에 대해 일본의 기업들도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문 의장은 이에 앞서 한국의 여야 지도부에게도 해당 방안에 대해 설명했고, 모두 공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일본과 멕시코, 미국을 잇는 ‘6박9일’ 의회외교 순방일정을 마치고 11일 귀국한 문 의장은 지난 8일과 9일(현지시간) 양일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한 순방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 의장은 지난 5일 일본 와세다대학교 특별강연을 통해 한일갈등의 배경이 된 일본 강제징용 소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제징용의 책임이 있는 한일 기업의 기부금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의 민간성금을 모으는 방안을 제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우선 본인이 내놓을 법안에는 배상 대상에 강제징용 피해자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포함된다고 했다. 문 의장은 조만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문 의장은 “(이 법안으로 강제징용뿐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와 군인군속 등을 포함해 모든 (한일 간의)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마무리 짓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이번 방일 기간 동안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과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일본 외무상 출신인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 등 일본 정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기업 관계자들과도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일본 기업들도 배상금을) 다 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전범기업’들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또한 “일본에 오기 전에 5당 대표들에게 (지난달 30일 정치협상회의에서) 이 법안에 대해 설명을 드렸더니, 무조건 문 의장의 활동에 지지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한 별도의 합의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여야 대표들이 정치협상회의 이후 합의한 ‘남북·한미·한일 관계의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국익에 기반해 초당적인 협력을 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내용 안에 이것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이 법안의 특징이 ‘자발성’이라고 했다. 문 의장은 “(일본 기업이든 한국 기업이든 배상금을) 안 내면 그만”이라며 “누구에게 내라고 강요하는 것도 없다. 그것이 이 법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인터뷰 내내 1999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강조했다. 문 의장은 “당시 오부치는 선언에서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고 했다. 이 정신을 (법안으로)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 의장은 이 법을 준비하기 위해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피해자와 당국, 청와대와 정부를 망라해 관련자들 중에서 나와 안 만난 사람이 없다. 아베 빼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났다”고 전했다.
이어 “(내가 만난) 피해자들은 이 법으로 보상의 길이 열리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했다”며 “(전범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를 계속 강행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법을 연말까지 처리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수십 번의 공청회를 해야 한다. 물론 피해자 대표들도 다 참석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피해자가 동의를 하지 않으면 (이 법안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을 향해선 “이 문제의 피해자는 그냥 피해자가 아니다. 전쟁·인권문제의 피해자”라며 “여기에는 시효도 없다.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문 의장은 한일 양국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이 법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서 ‘나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의장은 “(한일관계를) 그냥 내버려두면 파국으로 간다. 누군가는 (두 나라가) 비빌 언덕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귀국한 문 의장 앞에는 ‘강제징용’뿐만 아니라 패스트트랙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문 의장은 우선 예정대로 사법개혁 관련 법안을 12월3일 부의할 것이라고 했다.
문 의장은 “(여야가) 협상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아침까지 기다리면서 합의를 독촉할 것”이라며 “‘본회의 투표는 응하지만 반대하겠다’는 합의도 합의로 볼 것이다. 그래도 (합의가)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부의된 안건을 안 다루면 의회주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12월3일 부의’에 대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일각의 반발에 대해서는 “그들은 다른 날을 부의 날짜로 잡아도 또 그럴 것(반대할 것)”이라며 “나는 그렇게 정치 안 한다. 극단적인 안을 배제하고 항상 중용의 길, 합리적적인 길로 가려 했다”고 지적했다.
문 의장은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에 대해선 ‘절반의 성공’이라고 했다. 다만, 이 같은 평가를 내린 데에는 “국회 탓이 크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할 일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서 “(남은 2년 6개월의 과제는) 뭐니 해도 민생이다. 정권이 2년 반이 넘으면 누구 탓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문 의장은 국회 내 대표적 개헌론자 중 한 명인만큼, 20대 국회에서 ‘개헌’을 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4·19 6·10과 같은 혁명의 이후에는 개헌이라는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랐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도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때문에 생긴 것이다. (권력을) 분산하려면 개헌밖에 답이 없다”며 “그걸 마무리 안 하니 촛불이 일상화가 되고, (이제는) 검찰에 (정치가) 좌지우지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문 의장은 이번 순방을 통해 취임 1여년 만에 4강 국가(미국·일본·중국·러시아)들과의 의회외교를 마무리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미국)·베이징대(중국)·러시아상원(러시아)·와세다대(일본) 연설을 통해 우리의 의회외교에 대한 인식과 방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남아 있다. 바로 ‘남북국회회담’이 무산된 것이다. 지난 해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서로 친서를 주고 받으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하노이회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는 남북국회회담 성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 의장은 “북미가 잘되면 남북도 잘되고, 그러면 국회회담도 잘 될 것”이라며 “북미가 연내에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관계 개선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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