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14일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는 마이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힌 지 반나절 만에 나온 것이어서 협상재개 관련 북미 간 접점이 좁혀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수석대표인 김 대사는 담화에서 “우리의 요구사항들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들이 선행돼야 하는가 명백히 밝힌 만큼 이제는 미국 측이 대답과 해결책을 내놓을 차례”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세변화에 따라 순간에 휴짓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개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를 협상에로 유도할 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문제해결은 가망이 없다”면서 대조선적대시 정책 철회를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재차 강조했다. ‘종전선언’ ‘연락사무소’를 꼭 집어 부차적 문제로 간주한 것은 결국 협상 재개를 놓고 제재 해제 같은 ‘“통’을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읽힌다.
김 대사는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인) 비건은 제3국을 통하여 조미쌍방이 12월 중에 다시 만나 협상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했다. 이어 “해결책을 마련했다면 직접 설명하면 될 것”이라며 ”미국의 대화 제기가 만남이나 연출하여 시간벌이를 해보려는 술책으로밖에 달리 판단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대화 재개를 위한 물밑 접촉 상황까지 공개하면서 미국의 직거래 결단을 촉구한 셈이다.
스톡홀름 노딜 이후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 당 부위원장, 권정근 외무성 순회대사 등을 내세워 압박을 했던 북한이 다시 협상의 얼굴인 김 대사를 내세운 것은 팽팽했던 북-미 기류가 미묘하게 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앞서 에스퍼 장관은 13일(현지 시간)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의) 외교의 길을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 외교가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외교(협상)의 필요성에 따라 (한미) 훈련을 더 많게 혹은 적게 조정할 것“이라고도 했다. 불과 일주일 전 데이비드 이스트번 국방부 대변인과 랜들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우리는 북한의 분노 수준에 따라 훈련 규모를 조정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과는 사뭇 달라진 기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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