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투자 감소로 성장제한’ 진단… ‘부진’ 글자에 테이프 붙여 수정도
“특정지표 확대해석 차단” 해명
정부가 매달 내놓는 경기진단에서 8개월 만에 ‘부진하다’는 표현을 뺐다. 그동안 ‘부진하다’는 평가는 수출과 투자에 국한된 표현이었는데 자칫 경제 전체가 부진하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이유다. 당초 ‘부진’이라고 쓴 단어 위에 테이프를 붙여 급하게 수정했다.
기획재정부는 15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1월호에서 3분기(7∼9월) ‘우리 경제는 생산과 소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출과 건설투자 감소세가 이어져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달 전 ‘수출 및 투자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던 것과 비슷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부진’이라는 표현은 삭제했다. 그린북에서 ‘부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기간은 4∼10월 7개월로 2005년 그린북을 처음 발간한 이래 가장 길었다.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경기가 바닥을 쳤다거나 그간의 경기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고 수출과 투자에 특정한 표현을 경제 전반에 대한 부진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 더 정확한 용어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대외적으로 글로벌 교역과 제조업 경기 위축 등 세계 경제가 동반 둔화하는 가운데 일본 수출 규제,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반도체 업황 회복 시기 등 불확실성이 상존한다는 판단이다.
경기 인식에 큰 변화가 없는데 정부가 ‘부진’이라는 표현을 뺀 것을 두고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한국 경제에 대한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보여 달라”며 국민들에게 현 경제 상황과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을 자세히 설명하라고 지시한 게 영향을 끼쳤다는 관측도 있다. 기재부는 그린북 인쇄본의 종합평가에 나온 ‘반도체 업황 부진’이라는 표현을 ‘반도체 단가 하락’으로 급하게 바꾸느라 일일이 테이프를 붙여 수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표현 변경은 며칠 전 결정된 것으로 청와대와 무관하다”고 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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