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대표로는 2003년 최병렬 이어 두 번째
지소미아·패스트트랙 등에 반발…對與투쟁 승부수
보수통합, 인적쇄신 등 리더십 위기 만회할 수도
당 "정치공학적 해석 말라…온 몸 던져 투쟁해야"
지난 9월16일 삭발을 감행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면서 정치권에 논란이 분분하다. 황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선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른 야당의 지도부나 의원들이 단식투쟁에 나선 전례는 있었지만 제1야당의 당대표가 감행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른 만큼 파장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당 지도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황 대표의 결단에 대해 “사실 목숨 거는 거다. 건강상 치명상 올 수 있잖느냐”며 “절대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지 말라. 누군가는 나서서 이 시기에 온 몸 던져 투쟁해야 하지 않나. 야당 책임자로서 늘 책임을 느끼는 것”이라고 전했다.
황 대표의 단식 투쟁을 두고 당에서는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패스트트랙 정국과 총선 정국과 맞물려 황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잇단 악재와 자충수가 겹치면서 리더십 위기 논란이 가중되는 속에서 황 대표가 제1야당 수장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황 대표가 단식 투쟁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 내에서 당대표 단식농성은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에 이어 16년 만이다.
황 대표는 정치권에 발을 들인지 불과 9개월여 만에 제1야당 대표 초유의 단식농성을 감행한 것이다. 이는 대여(對與)투쟁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한편 당 내는 물론 반문(反文)투쟁을 위한 범야권의 결집 효과도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황 대표가 단식농성 장소로 국회가 아닌 청와대 앞으로 정한 것도 문 대통령에게 국정실패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국정대전환을 강력하게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단식 농성의 배경으로는 일차적으로 원내 현안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우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강행에 저항하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선거법 개정안은 오는 27일, 공수처법은 12월3일 각각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으로 여야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 표결을 시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여권의 강경한 의지를 꺾기 쉽지 않자 나름 돌파구로 단식농성을 택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설사 단식 농성으로도 황 대표의 요구안이 여권에 관철되지 않더라도 당대표로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 만큼 무기력한 제1야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명분을 쌓으려는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황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패스트트랙 선거법은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세력이 국회를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시도하는 것”이라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애당초 의석수를 늘리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제도였다. 범여권 의원들도 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 알고도 의석수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국민을 속인 것이다. 참으로 간교하다”고 힐난했다.
또 “공수처법 역시 합법적 독재를 완성시키려는 이 정권의 검은 의도에서 비롯됐다”며 “공수처법을 검찰 개혁법안이라고 국민을 속이고 있는데 개악이다”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의 단식투쟁은 총체적 리더십 위기라는 일각의 비판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 안팎에서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정국이 물러가며 곧바로 들이닥칠 총선 정국에서 전략 부재를 의심받고 있다.
총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인적 쇄신, 보수 통합, 인재 영입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 세 가지 모두 황 대표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선 김세연 의원이 영남 중진으로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전격적으로 선언했지만 이러한 희생이 한국당의 인적쇄신의 동력이 되기보다는 당 내 해묵은 계파 갈등 조짐이 일면서 ‘분란의 씨앗’만 되고 있다. 황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서 인적 쇄신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당 내에서 흘러 나온다.
인재영입에서도 성과가 부진한 편이다.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배우자가 기소된 박찬주 예비역 대장을 ‘1호 인재’로 영입하려다가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안팎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황 대표는 1차 인재 영입 효과가 시원치 않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곧바로 2차 인재영입 명단을 발표하려 했지만 당 지도부의 만류로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야권의 보수통합 역시 서울·수도권은 물론 전 지역에서 한국당이 흥행을 일으키며 총선 정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지만 황 대표가 보수대통합 선언을 한 후 큰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당에서 보수통합 우선 순위인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과의 통합과 관련해선 황 대표 측에서 유승민 의원 쪽과 지속적으로 물밑 접촉을 해오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변혁 쪽에서는 한국당의 협상파트너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황 대표가 보수통합을 둘러싼 진정성을 의심받으면서 잡음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황 대표의 단식투쟁의 성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것도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야당과의 협치 노력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황 대표가 거절당한 영수회담을 다시 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꽉 막힌 정국의 돌파구를 찾고 국면 전환도 가능하다.
반면 문 대통령이 황 대표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영수회담 등에 응하지 않을 경우 황 대표로서는 여론의 힘을 빌려 단식투쟁의 명분을 확보하고 문재인 정권을 압박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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