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송환에 대한 법률제도정비 시급하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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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동해상에서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닷새 만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되었다. 이 사건은 이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대통령비서실 관계자가 북한 주민을 송환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북한이탈주민을 귀순 의사에 반하여 북한으로 송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현재 국내정치적 이유에서라도 북-미 핵 협상의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청와대가 북한을 의식해 무리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을 동해 NLL 해역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이 목선은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고 도피 중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타고 있던 배다. (통일부 제공)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을 동해 NLL 해역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이 목선은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고 도피 중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타고 있던 배다. (통일부 제공)
우선 이 사건 북한이탈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의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바이다. 따라서 범죄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방어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고 의사에 반하여 북한이탈주민을 송환한 것은, 명백히 사법 주권의 부당한 포기이자 기본권의 침해이다. 특히, 송환 과정에서 이들은 안대로 눈이 가려진 채 송환되는 줄도 모르고 판문점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이는 보호 여부 결정 시 당사자에게 반드시 통보하도록 한 ‘북한이탈주민법’ 제8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은 실질적인 사형 폐지 국가인 반면 북한은 적극적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데, 사형까지 가능한 범죄의 피의자를 사형 폐지 국가가 사형 미집행 약속 없이 사형 집행 국가에 인도하는 예는 없다. 나아가 수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고문을 시행하는 북한 형사당국의 실태를 고려할 때, 정부의 이번 결정은 고문 위험 국가에 개인을 추방·송환하거나 인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한 혐의도 있다.

오늘날 한국인이 밀입북하는 경우, 북한은 이를 체포하여 조사 후 종교적·안보적 혐의점이 없다면 한국으로 송환하는 일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북한으로 도피한 피의자는 대개 한국으로 인도된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내려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북미 비핵화 협상 및 남북 관계 개선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국내정치적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북한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먼저 송환을 제안하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고려가 엿보인다.

남북관계는 오랫동안 법적 영역보다는 정치적 영역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칙은 실종되고, 남북한 주민의 권익은 그때그때의 정치적 환경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였다. 출범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뚜렷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한반도정책의 ‘4대 전략’에서 ‘제도화를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정부는 북한과의 단기적인 관계 개선에 급급하여 사법 주권과 기본권 보호라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을 양보하였으며, 그 결과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위한 원칙의 기반을 훼손하였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책 목표의 달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및 제도화에 관해 진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확고한 원칙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북한이탈주민의 송환에 관한 사법적 원칙과 절차를 마련하여야 한다. 적어도 서울고등법원의 범죄인인도심사 대상에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해야 할 것이며 북한의 요청이 없는 한 송환 절차를 개시해선 안 된다. 범죄인인도심사제도 자체도, 삼심이 아니라 단심으로 결정하며 항소를 불허하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고, 심사대상자의 변호인 선임을 의무화하여 실질적인 방어권 행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범죄인인도심사에서 심사대상자가 형편상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국선 변호인을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 결과, 정치적 고려에 따라서 정부가 임의로 북한이탈주민의 송환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남북합의서를 체결하여 형사사법공조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북한 당국이 남한에 소재하는 북한이탈주민의 범죄에 대하여 재판관할권을 행사함으로써 이른바 사법 주권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범죄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북한 당국이 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때 형사소송법상 북한의 조사 자료에 대한 증거능력의 부여가 문제된다. 현재 법적으로 한국은 북한을 국가나 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형사당국 역시 공공기관이 아니라 사인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이 작성한 진술조서, 검증조서, 실황조사서, 수사보고서 등 그들의 입장에서 공문서에 해당하는 모든 것들이 한국의 형사소송법상으로는 사인이 작성한 사문서에 불과하다. 한국 법정에서 사문서를 형사소송의 증거로 삼으려면 작성자가 법정에 직접 출두하여 진술하거나, 그가 외국 거주 등의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 문서의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하여진 것임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형사당국 종사자를 일일이 재판에 출두하도록 할 수도 없고, 북한을 외국으로 볼 수도 없으며, 현재로써는 고문이나 날조 없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문서가 작성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확보될 것을 전제로”, 사실을 소명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에 한하여 관련 정보가 재판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남북합의서를 통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형사사법공조에 관해서는 북한을 외국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북한의 조사 및 수사 과정에 한국 측 검사 및 변호인이 입회할 수 있도록 합의서에 규정한다면 증거법상의 문제는 다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송환 또는 처벌을 원하는 사안에 대하여 북한의 조사 및 수사 내용을 한국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사 단계에서 공조를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적 범죄 등 남북이 서로 달리 규정하고 있는 사항의 경우 형사사법공조의 대상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범죄사실을 우리나라 법정에서 입증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차원에서 송환 결정이 타당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다분히 추정적인 결과론에 근거한 주장이어서, 추방 결정 과정의 위법성을 조각하지는 못한다. 법은 옳은 논리를 통해 옳은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또한 이 주장은 사건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든 책임이 우리 정부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는 분명히 ‘범죄 행위를 의심할 것이 없을 정도로 조사가 됐다’고 밝혔으나, 범죄 현장인 어선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면서 추가 입증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다. 사법 주권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범죄 혐의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하였다면 국내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사건에서 정부가 북한이탈주민들의 범죄사실이 존재함을 명백히 확인하였다면, 정부가 이들을 정식으로 수사, 기소, 재판하여 대한민국 국민과 마찬가지로 처결하여야 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이유로 송환을 추진하더라도, 사법 절차를 통해 피의자의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고 본다. 원칙에 의거하지 않고 닷새 만에 졸속으로 송환을 실행하였으므로, 지금 일고 있는 정치적 논란은 당연한 귀결이며,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한 번 내린 잘못된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을 것이고, 사지(死地)에 버려진 북한이탈주민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안교원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13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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