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00년 4월. 서른넷의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임종석 후보는 서울 성동구를 누비며 한 표를 호소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인 그의 공략 대상은 젊은층. 20대 선거운동원으로 ‘2020본부’를 꾸려 대학가와 호프집을 돌았고, 인터넷 세대를 겨냥해 e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정치권 물갈이 열풍에 임 후보와 경쟁한 4선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세기 의원은 고배를 마셨다.
#장면 2.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달 17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21대 총선 불출마를 밝혔다. 그의 느닷없는 선언은 출마하려던 서울 종로에 대한 ‘교통정리’가 불발된 탓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불똥은 다른 데로 튀었다.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86세대는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나선 것과 맞물려 86그룹 교체론이 불거진 것이다. 임 전 실장은 쉰셋으로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58.7세)보다 젊다. 하지만 그는 86그룹이라는 틀 안에서 20년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가 20년 만에 인적쇄신의 무대에 다시 소환됐다. 내용은 180도 달라졌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에는 정치 세대교체의 주역이었다면 이번에는 쇄신론의 대상이 됐다. 다선 의원의 ‘자의 반 타의 반’ 퇴진은 역대 총선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여의도 기준으로 ‘한창 나이’인 86세대에 대한 용퇴론은 기존의 용퇴론과 결이 크게 다르다. 민주화 성취라는 성과를 바탕으로 기회와 자원을 장기간 독점해온 세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 여의도 ‘앙팡 테리블’이던 86세대
86세대를 여의도로 불러낸 것은 1999년 ‘뉴 밀레니엄’ 열풍이었다. 지역 대결구도와 구태정치에서 벗어나 새 정치를 바라는 염원이 대대적인 물갈이 요구로 이어진 것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쪽은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였다.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은 16대 총선을 1년 앞둔 1999년 4월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젊은 세대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주역이 될 각 분야의 젊은 전문가를 영입하라는 취지였다. 여당 지도부는 DJ의 ‘젊은피 수혈론’에 곧바로 80년대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인사들을 만났고, 30대의 ‘86 운동권’ 출신들은 영입 대상 1순위로 부각됐다.
당시 우상호 전 연세대 총학생회장,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전대협 1·2·3기 의장, 윤호중 전 서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간부 등 386 운동권 인사들도 ‘젊은 한국’ ‘녹색연대 21’ 등 개혁적 청년정치를 표방한 각종 모임을 만들어 여의도 진입을 노렸다.
한나라당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춘 의원, 고진화 전 의원과 함께 ‘신진 엘리트’라며 변호사이던 오세훈 원희룡 등 386 인사를 내세웠다.
16대 총선에서 86세대 몇 명이 국회에 입성할지는 정치 세대교체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총선 결과 전체 당선자 중 30대는 4.8%인 13명. 여야에서 총 37명이 나선 상황에서 386세대의 약진이라고 할 만했다. 특히 1960년 4·19혁명의 주역들이 줄줄이 386 후보에게 쓰러지며 16대 총선은 ‘4·19세대의 퇴진’으로 기록됐다.
386 당선자들은 정치개혁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보스정치 탈피, 거수기 역할 거부 등 서슴없이 당내 민주화를 화두로 던지며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불렸다. 이들이 타는 승용차까지 화제가 됐다. 검은 세단이 즐비한 의원 주차장에서 ‘국민차’로 불린 쏘나타나 승합차인 카니발은 눈에 띄었다. 당시 중고 EF쏘나타를 이용한 임 전 실장은 “자동차에서부터 문턱 없이 항상 열려 있는 의원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16대 총선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86세대는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2004년 17대 총선을 거치며 정치권의 주요 세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86세대가 20년 가까이 권력을 차지하며 새로운 30대는 정치판에서 사라지는 역설이 나타났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86세대는 30대였던 1996년 15대 총선에서 10명(3%)이 배지를 달았다. 이들이 40대에 진입한 2004년 17대 총선에선 106명(35%)의 40대 당선자가 나왔다. 아래 세대는 그만큼 기회를 빼앗겼다. 86세대가 50대로 대거 편입된 2016년 20대 총선 당선자 중 30대는 2명, 40대는 50명(17%)에 불과했다. 반면 50대 당선자는 161명(54%)이나 됐다. 86세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다.
○ 세대교체 주체에서 대상으로
86세대에 대한 용퇴론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7월 처음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33세였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이동학 혁신위원은 당내 86그룹의 맏형 격인 이인영 의원을 향해 “당의 활로가 돼 달라”면서 ‘적진’ 출마를 요청했다. 86세대인 임미애 혁신위원도 “86세대는 아직도 19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며 ‘86 숙주정치’라는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외부 인사들의 저격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이후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임 전 실장의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다시 불거진 86세대 용퇴론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권에선 발원지가 86그룹이자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용퇴론에 그만큼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에서 86그룹은 정치 행정 각 분야에서 핵심 요직을 꿰차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입각을 했고 이인영 원내대표를 포함해 송영길 안민석 김태년 우상호 윤호중 조정식 최재성 의원(선수 및 가나다순) 등은 민주당을 이끌고 있다. 86그룹의 용퇴가 여당 내 인적 쇄신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일단 86그룹들은 발끈하는 분위기다. 세대교체라는 깃발 아래 들어왔던 이들이 단지 20년 가까이 정치를 했다는 이유로 물갈이 대상이 되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다. 86그룹의 막내 격인 재선의 박홍근 의원은 “과거 YS, DJ의 ‘40대 기수론’이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의 정풍운동처럼 정치 개혁이란 명분이 있을 때 물갈이를 하는 거지 지금처럼 특정한 시기를 산 사람은 다 그만두라고 하는 건 반(反)헌법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생양을 억지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우상호 의원도 “임 전 실장이 그만둔 건 종로 출마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큰 건데 화살을 우리에게 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거론되는 86세대 용퇴론이 비단 여당 내 인적쇄신을 촉발하려는 정치적 전략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86세대의 장기 독점에 따른 피로감이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교수는 “86세대 정치인들은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염원 속에 여의도에 들어왔지만 20년이 흐른 현재 국민들이 볼 때는 그들도 기득권”이라며 “개혁의 상징이었던 86세대의 유통기한은 끝났다”고 말했다. 82학번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86세대가 사회 주도세력으로 활동한 것에 대해 “386들이 80년대 10년 동안 나왔던 사람들이니까 10년은 이 세대가 사회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86세대의) 심각성이 더하다고 느꼈다. 86세대 우리 역할은 끝났다.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세대교체의 본질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신진 세력이 낡은 세력을 밀어내는 것이다. 정치혁신을 갈구하던 뉴 밀레니엄 열풍에 따라 들어온 86그룹이 내년 총선의 시대정신 속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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