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정 서울대 교수가 본 한일관계 해법

  • 신동아
  • 입력 2019년 11월 23일 10시 26분


“日 책임과 별개로 韓 정부도 강제동원 보상해야”

● “일본 원칙 고수, 돌파구 마련 어려울 듯”
● “압류자산 현금화하면 파괴적 상황”
● 지소미아,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기제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 역할 줘야”
● “대일외교와 국내 정치 투 레벨 게임 필요”
● 일본에서 점점 낮아지는 한국 위상
● “한일 간 역사 해석 일치화해야”
● 일본이 더 세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 있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새로운 한일관계가 순조롭게 조성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10월 말 이낙연 총리와 아베 총리가 회담을 했고, 11월 초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11분간 환담한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한일 정상의 환담에 대한 평가는 양국 간 온도차가 있다. 한국에선 악화되던 한일관계가 반전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 반면, NHK 등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고 보도했다.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판결 이후 1년이 지났다.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은 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배상해야 하지만이를 거부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이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한 상태다. 이 판결 이후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돼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무역분쟁이 발생했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양국의 갈등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현재의 한일관계가 놓인 지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 분야 전문가인 남기정(55)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를 11월 7일 연구소에서 만났다. 남 교수는 일본 정치와 외교, 국제정치 전문가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인 와다 하루키 교수의 제자로, 2000년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호쿠대, 국민대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로 있다.

- 11월 초 일본 출장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일갈등과 관련해 최근 일본 사회에 일련의 변화가 있는지요.

“일본에서는 한일갈등이 원래부터 핫이슈는 아니었습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자체도 한국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큰 주제는 아니고요. 많은 일 중 하나로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일본 원칙 고수, 돌파구 마련 어려울 듯

- 대개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도 우리처럼 여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으로 여기는데요.

“일본에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 가십거리 중심인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을 우습게 보는 논조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TV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던 것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고요. 더욱이 한일 간에 변화 가능성이 보이면서 특히 우익 쪽에서 경각심을 갖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의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한일 양국 정상 환담 등을 계기로 국내에선 새로운 한일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기대감을 가져도 될까요.

“일본이 그동안 고위급 회담뿐 아니라 한국을 전혀 상대하지 않던 것에 비하면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배상판결, 화이트리스트 등에 대한 자국의 원칙을 바꾸지 않고 있으므로 돌파구가 쉽게 마련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상당히 많은 대화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성급하게 문제를 풀려고 나설 경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비슷하게, 혹은 더 크게 실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우리가 어떤 원칙을 견지해야 하는지요.

“지난해 10, 12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우리 헌법과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 해석에 입각해서 전혀 문제가 없으므로 일본에 그 입장을 더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한편으로 초미의 관심사는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요구입니다. 압류자산 현금화에 대해선 일본이 오래전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마지노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에 현금화하면 한일관계가 이제까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파괴적인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도, 일본도 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접점을 찾으려고 하는 건데요. 그렇다고 문제를 일거에 풀고, 화이트리스트 이전 상황으로 회복되도록 성급히 목표를 설정할 경우 잘못될 가능성도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 그렇다면 현재는 기대감을 갖기보다는 더 신중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문희상 국회의장 등이 주장한 1+1+α 등의 방식은 그동안 우리가 견지하던 원칙을 우회해서 가려는 노력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과의 관계에서 그동안 지켜왔던 원칙을 지키지 못할 것이고, 국내적으로 반발이 거세질 수 있습니다. 외교에서도 실리를 얻지 못하고, 국내 지지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이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일본을 방문해 한국과 일본의 기업을 대상으로 (자율) 모금해 강제동원 피해자에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큰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또 다른 2015년 위안부 합의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러면 또 다른 비극이고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정부가 6월 19일 제안한 안인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위자료 지급)대로 하고, ‘알파’ 부분은 별도의 트랙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정치적 해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지소미아,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기제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4일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제22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사전환담을 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4일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제22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사전환담을 했다. [청와대 제공]
- 강경하던 아베 총리가 한국 대통령과 총리를 만나는 등 조금이나마 유화적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일본도 여러 가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소미아가 유지되기를 미국이 바라는 상황이라 일본도 한국과 대화하는 모습을 갖추려 하고 있고요. 레이와(令和)라는 새 시대를 맞이해 주변국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가면서 평화로운 일본을 주장하고 싶을 것이고 일본 국민도 그런 기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20년 하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준비하면서 주변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은 거죠. 다만 어떤 내용을 가지고 대화할지가 중요한데 일본이 워낙 원칙을 강하게 고수해 쉽게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11월 23일 0시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 행정부가 직접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일 간 정보공유에 대한 협정인데 미국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소미아는 미국에 동아시아 차원의 안보 기제입니다. 단순히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한일 양국이 공동 대처하는 것을 떠나 기왕의 안보 기제를 더 굳건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것은 특히 중국 때문인데,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장기적으로 기왕의 안보 틀 하나가 빠지는 것이므로 거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미일동맹은 미국의 외교정책, 군사안보 외교정책의 중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미국 정계에서는 과거의 영미관계만큼이나 지금의 미일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일본도 그런 생각에 올라타고 있어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 역할 줘야”

- 그 굳건한 체제에서 일본이 빠질 이유가 없겠군요.

“일본이 오히려 더 원하는 구도이지요. 동아시아에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아베 총리는 지금 MD(미사일 방어체계)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라 적어도 북한에 대한 압박 카드를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압박 강도를 높이는 한 수단으로 지소미아를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반면 일본 내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적극적 움직임도 있는데요. 그 차원에서 보면 지소미아는 사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지소미아는 일본의 대북정책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 한일관계에서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듯합니다. 교수님이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한일관계가 더 높은 수준의 화해로 가려면 한미일 삼각동맹하에서 역사 갈등을 관리하기보다 ‘동북아에서 다자적 안보공동체 구축을 통한 평화의 확대를 위해 협력하면서 역사 문제를 해소해나가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지금도 유효한 시각이라고 보시는지요.

“과거에는 냉전과 한반도의 정전 상태하에서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생존은 한미일 안보삼각동맹에 크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안보와 역사가 교환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미일동맹 차원에서 보면 안보가 중심이 됐고, 역사는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안보를 사기 위해 역사를 파는 형국이었죠.

그런데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양자적 안보틀에서 다자적 틀로 가져가야 하고, 거기서 일본이 좀 더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평화의 틀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봤어요. 그래야 일본이 안보뿐 아니라 역사 문제에서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평화 틀이 만들어질 때 독일은 과거 역사 문제를 해결해야 그 무대로 나갈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평화 틀을 만들 때 일본에도 일정한 역할이 주어지면 역사 문제에서 진전을 보일 수 있다는 게 남 교수의 생각이었다.

“사실 1990년대 초반에 일본에 그런 경향이 보였습니다. 탈냉전 이후 일본에서 미일동맹이라는 틀을 벗어나 아시아와의 관계 재정립이 외교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중국, 한국과의 관계도 고민이었고, 다른 아시아 국가와 관계를 갖기 위해선 위안부 등 역사 문제 해결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가 적극 발언하면서 역사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요.”

“대일외교와 국내 정치 투 레벨 게임 필요”

- 일본은 아시아에서 관계 재정립이 필요했고, 한국에선 민주화가 진전돼 이 두 가지가 맞물린 거군요.

“그렇지요. 오부치 총리 시기에 일본이 아시아 외교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시아로 나가기 위해서 역사 문제를 일정 정도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그런 의미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일 양국의 역사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일본을 동북아시아로 끌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근래 일본은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세우면서 여기에서 멀어지는 형국이었고, 문재인 정부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일본의 역할을 상정하지 못했습니다.”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을 엮어서 사고하지 못했다는 말씀이군요.

“동북아에서 미중뿐 아니라 러시아 일본을 포괄한 6자 틀을 부활하는 노력도 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핵심은 남북한과 일본입니다. 안보와 역사 문제가 연동될 수 있는 관계인데요. 즉 평화 구축 틀 속으로 일본을 끌어와 남북 화해와 한일 화해를 동시에 이끌어가는 노력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에 올인하느라 한일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친 것이 한일 외교가 어려운 국면으로 간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러면 앞으로는 어떤 구상이 필요할까요.

“역사 문제는 장기적 과제로 넘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금방 풀릴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아베 총리 체제에서는 역사 문제가 진전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과제라고 일본에 던져둘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정치 현실도 감안하면서 역사적 정의의 원칙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깊고 넓은 시야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정부는 너무 법적인 접근만 해왔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대일 외교에서도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국면인 거죠. 그래서 대일 외교와 국내 정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투 레벨 게임이 필요합니다.”

국제정치학에서 투 레벨 게임 이론(two-level games theory)은 국제협상을 위해서는 국내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협상과 국내 정치가 분리돼선 안 된다는 이론으로 미국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푸트남이 주장했다.

일본에서 점점 낮아지는 한국 위상

- 현재 이런 복잡한 역할을 맡는 곳은 어디인가요.

“글쎄요, 어디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외교부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것 같고요. 과거 대일 외교 전선에 있던 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거지요. 청와대 안에서도 대책이 정리돼서 나오는 것 같지 않고요.”

- 한일관계 전문가가 모른다고 하니 걱정이 좀 되네요.

“이 정부가 스스로 만든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8년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동아시아에서 매우 유동적 상황을 만들어놓았습니다. 한반도에선 새 질서를 만들려고 하면서 대일 외교에서는 그런 구상을 갖지 못한 상황이어서 거기서 막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2018년 상황이 지정학의 대전선을 흔들어놓았고, 100년 역사의 층위를 건드린 겁니다. 역사적 대전환과 지정학의 대전선이라는 시공간이 교차하는 상황입니다. 질서가 크게 변하고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대일 외교가 대단히 빈약했고,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일본을 너무 믿었던 것일까요.

“그런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전후로는 ‘일본이 설마’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베 시대에 들어와선 이전의 일본이 아닌 것 같아요. 아베 시대엔 한국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어요. 일본의 방위백서나 외교청사를 보면 한국에 대한 서술이 과거 2,3번째였던 것이 5,6위로 미끄러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일본 국민의 우경화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대일 공공외교도 더 높은 수준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책임 져야”

- 역사 문제를 장기 과제로 둔다면 당장 강제징용(남 교수는 ‘강제’와 ‘징(徵)’이 같은 의미이므로 강제동원이란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법적 판단과는 거리를 두고, 또 다른 해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해야 합니다. 즉 강제동원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갖고 우리가 전향적으로 먼저 문제를 푸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일본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책임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일차 책임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니까 일본이 전향적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원칙을 세워두고요. 그렇다고 이 문제를 덮는 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하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가 자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촛불 정부가 세워졌을 때 1919년 임시정부 건국 법통을 이어받겠다고 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100년을 크게 기념했습니다. 결국 1948년 건국설을 부인하고 나온 것인데요. 그렇다면 과거 정부와 다른 책임도 자각해야 합니다.”

남 교수의 ‘정부 책임론’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근대국가는 주권, 국민, 영토로 이뤄지는데, 당시 임시정부는 기미독립선언으로 주권 선언을 했으나 영토를 빼앗긴 상태였다. 결국 강점된 영토에서 외국 기업과 국가권력이 와서 우리 국민에게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임시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책임과 별도로 우리가 명예롭게 선제적으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일본에 자성을 촉구하고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게 하는 것, 이것이 기미독립선언 기본 정신에 합치하는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임시정부의 책임을 자각하고 그것을 이행하도록 우리 정부가 법률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일본에 가장 커다란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일본이 가장 두려워할 일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도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과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봅니다. 우리 스스로 과거 문제를 껴안고 해결했다, 제도적으로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한일 간 역사 해석 일치화해야

-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나왔을 때부터 짐작한 것인데, 일본의 저강도 복합전술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저강도 위협으로 한국에 계속 메시지를 던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1965년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안정화를 목표로 해서 일본을 우군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1965년 체제의 안정화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지금 1965년 체제의 조약과 협정에 대한 한일 간 해석이 서로 다릅니다. 그것을 일치화하는 역사 청산 작업을 말합니다. 1965년 이후 일본의 역사 인식이 진전돼 있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면서 1965년 체제를 이전과 다르게 해석한 면이 있습니다.”

- 해석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청구권협정 제1, 2조에 대한 일본의 주장이 달라졌습니다. 대법원 판결 직후 고노 다로 외상이 내놓은 담화와, 협의와 중재를 요청하면서 일본이 우리 정부에 제시한 내용을 보면 한일협정을 지켜달라면서 1조에서 돈을 냈고, 2조에서 청구권이 해결된 것인데 왜 다른 소리를 하느냐고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1, 2조가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우리 정부의 논리와 비슷해진 겁니다. 따라서 일본이 청구권의 대가로 우리에게 자금을 준 것임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한일갈등의 가장 근본적 해법은 무엇인지요.

“한일 간 역사 해석을 일치시키는 일이 우선 중요합니다. 일본도 고노 담화 이후 인식이 변화해왔는데, 그것은 일본도 협정 해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겁니다. 다만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부당성에 대해선 이중적입니다. 부당하긴 하나 불법은 아니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간 나오토 담화에서 불법성과 부당성 사이에 있는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진전된 시각입니다. 일본이 이만큼 변화해왔으니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있었던 한일 양국의 노력을 정당하게 인정한다면 열린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이 더 세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 있다

남 교수는 향후 한일관계가 이탈리아와 리비아 관계처럼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이탈리아는 2008년 리비아와 새 조약을 맺고, 과거 식민지 문제에 대해 사죄하고, 과거 문제를 종결한다는 챕터를 만들어 경제적 지원을 했습니다. ‘레퍼레이션(reparation·배상)’이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그것이 ‘레퍼레이션’으로 해석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이 조약이 ‘레퍼레이션에 관한 조약’이라고 불릴 정도가 됐습니다. 일본도 이를 따라 하도록 해야 합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리가 불리하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제사회에서 인식이 이미 이렇게 발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이후 일본이 더 세게 나오지 못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본과의 역사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맞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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