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표 줄방문 ‘장외 회동장’ 돼… 서먹했던 손학규-유승민도 찾아와
黃, 삭발-장외집회 이어 파격카드… ‘즉흥적’ 우려에도 정치효과 상당
단식 7일째 기력 떨어져 거동 못해… “아직 할일 남았다” 병원행 거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26일로 일주일째를 맞았다. 황 대표 단식이 선거법 개정안의 27일 국회 본회의 부의를 계기로 다시 가열되고 있는 여야 패스트트랙 협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정치 초년생인 황 대표의 ‘지르기 정치’가 효과를 발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숱한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대규모 장외집회와 삭발에 이은 단식이 예상외의 주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 황교안 “할 일 남았다”며 병원행 거부
26일 청와대 앞 단식 농성텐트. 황 대표는 이날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파란 마스크를 쓰고 침낭을 덮은 채 안에 누워 있었다. 전날에는 지지자들에게 인사차 한 차례 천막 밖으로 나왔지만 기력이 급격히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김도읍 당대표 비서실장은 “물을 1000∼1500cc밖에 못 마셔서 신장 이상 징후인 단백뇨(단백질이 섞인 소변)가 나오고 감기까지 겹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전했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9시 10분경 농성장을 찾은 최고위원들에게 누운 채로 “아직 할 일이 남아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병원행을 완강히 거부했다고 정미경 최고위원이 전했다. 약사 출신인 김순례 최고위원은 “단백뇨가 피가 섞인 혈뇨로까지 악화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병원으로 모셔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오전에 이어 오후 10시에도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는 “제1야당 당 대표가 단식하는데 (패스트트랙 현안에) 여당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위급상황 시 황 대표를 이송할 병원을 미리 섭외해두고 밤늦게까지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에 대한 국회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황 대표의 단식 천막이 여야의 장외 회동장이 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고성을 주고받았던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6일 보수통합 협상 제의 후 만난 적 없던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도 26일 각각 황 대표를 찾아왔다. 단식 일주일 동안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25일), 민주평화당 정동영(22일) 등 여야 3당 대표들이 모두 단식 현장을 찾았다.
오후 3시경 농성장에 온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이 나라 민주주의는 이렇게 싸워서 지켜왔다”고 말하다가 실수로 황 대표를 ‘황교안 대통령’으로 칭하기도 했다. 오후 7시경부터 현장에 경찰이 충원되자 ‘전날 한국관광공사(청와대 앞 농성장 부지 관리기관)가 예고했던 행정대집행을 하는 것 아니냐’며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밤사이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 ‘황교안식 즉흥 정치’ 계속 통할까
정치 입문 11개월 차인 황 대표가 측근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강행한 청와대 앞 단식이 정치권의 핵으로 급부상하면서 “황교안식 정치를 다시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치밀한 정세 분석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즉흥적인 삭발이나 단식 등 파격적 행동이 예상치 못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가 9월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제1야당 대표 최초로 삭발 카드를 꺼냈을 때도 측근들은 ‘희화화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뜻밖에 ‘투블록 컷 멋쟁이’ 패러디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았다. 이번 단식도 최측근 참모들조차 “명분과 시기가 좋지 않다”며 반대했지만 황 대표가 강행했다. 단식 전까지 제기됐던 황 대표의 당 운영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일단 사그라들고 있다.
물론 위기 때마다 삭발, 단식 등 극단적인 카드로만 돌파하는 리더십으론 총선까지의 장기전을 치르기 어렵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당 관계자는 “‘포스트 조국’ 전략이 없었듯 ‘포스트 단식’에 대비한 큰 틀의 전략이 없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언젠가 단식 정국이 끝나면 보수통합과 인적쇄신, 리더십에 대한 공세 등 기존의 당내 문제들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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