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출신이 회고하는 ‘참군인’ 이기백
아웅산테러 당시 온몸에 파편상… 軍사령관때 직접 쌀가마니 옮겨
“군인 본분에 충실했던 진짜 군인”… 18일 국립서울현충원서 영결식
16일 향년 88세로 별세한 이기백 전 국방장관(왼쪽)이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 당시 그의 부관이었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과 자리를 함께한 모습. 동아일보DB
1983년 버마(현 미얀마)의 한 병원. ‘아웅산 테러’가 발생한 지 10시간 만에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고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육사 11기)이 의식을 찾았다. 그는 단상 첫 줄에 도열해 있던 8명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두개골이 드러나고, 온몸에 파편상을 입는 등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의식을 찾자마자 당시 중위로 부관이었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예비역 육군 중장·육사 37기)에게 말했다. “밥은 먹었나?”
테러 당시 고인을 구조한 전 전 사령관은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사경을 헤매면서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선 묻지도 않았다. 상관인 대통령을 챙겼고, 부하가 걱정돼 밥부터 챙기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은 깨어나자마자 “대통령은 괜찮으신가”라고 묻기도 했다.
전 전 사령관은 고인이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2군사령관에 이어 합참의장을 지낼 때까지 약 3년간 부관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고인은 2군사령관을 지낼 때 쌀 한 가마니를 들쳐 메고 1km 떨어진 곳까지 옮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 전 사령관은 “군인은 체력이 좋아야 나라도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를 직접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지만 이들이 주도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전 전 사령관은 “군인의 본분에 충실했던 진짜 군인이었다”고 했다.
고인은 2013년 본보 인터뷰에서 “아웅산 테러가 잊혀져 가는 현실이 한스럽다”고 했다. “북한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적화통일 생각에서 달라진 게 없다”고도 했다.
평생 테러 후유증에 시달렸던 고인은 16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영결식은 18일 낮 12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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