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부패 수사에 대한 의지와 책임을 가질 이유가 없어지고, 사회 전체적으론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가 무력화할 것이다. 수사 실무에선 엄청난 독소 조항이 될 것이다.”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은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수정안 24조를 이같이 평가했다. 경찰 출신으로 검찰 개혁 법안 중 하나로 공수처 설치를 주장하며 올 4월 공수처 설치 법안을 대표 발의한 ‘원안 설계자’인 권 의원조차 원안과 확연하게 달라진 수정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 원안 설계자마저 “수정안은 수사력 담보 못해”
공수처 수정안 24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과정서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며 검찰과 경찰, 금융감독원 등이 모두 수사 개시 보고를 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올 4월 여야 4당이 합의안 패스트트랙 원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수정안은 또 고위공직자 범죄 사건을 공수처가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에 사건을 넘겨야 한다고 정한다.
이에 대해 권 의원은 “수사가 개시되고 진행되는데 도중에 공수처가 사건을 가져가면 수사력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건을 넘긴 수사기관은 의욕을 잃고 책임감이 옅어지는 반면 중간에 사건을 넘겨받은 공수처는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권 의원은 또 수정안이 검사 25명 이내, 공수처 수사관 인원을 40명 이내로 정한 점도 지적했다. 원안과 검사 인원은 같고 수사관 인원만 30명 이내보다 10명 늘어났지만 여전히 부패 사건을 주로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 2개 안팎 정도에 불과해 제대로 된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같이 ‘머리’(권한)는 크고 ‘팔다리’(인원)는 적은 공수처의 기형적 구조를 빗대, 이른바 ‘가분수 공수처’라는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구조라면 부실하게 수사가 진행돼 사건의 실체 관계가 파헤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만 남발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공수처가 특정 인사에 대한 ‘선택적 표적 수사’ 도구로만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권 의원은 “조직 규모 자체가 부패범죄에 대해 총괄적으로 대응하는 수사조직이라기보다는 재단하고 선택해서 대응하는 조직 규모밖에 되지 못한다. 규모가 작은 조직 전체는 (정권에 따라) 하나의 방향으로 장악될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 공수처가 총선 선거범죄 수사할 수도
권 의원은 공수처 소속 검사의 자격 요건이 대폭 완화된 것에 대해 “자격 요건이 아예 무너졌다.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혹평했다. 수정안에서 공수처 소속 검사의 자격 요건은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에서 ‘공수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 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과거사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특정 성향의 변호사를 공수처 검사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 수사관의 자격 요건을 5년 이상으로 정한 원안과 달리 수정안이 기간 제한을 없앤 점도 논란거리다.
여당이 원안과 크게 달라진 수정안을 추진하는 것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수정안대로라면 총선 후 여당 의원들에 대한 선거범죄 수사를 경찰, 검찰이 진행하더라도 공수처가 수사를 중간에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공수처장과 검사 임명에 관여한다면 공수처에 대한 수사 보고는 청와대, 여당의 수사정보 공유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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