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중국-러시아 28일부터 오만만서 연합 훈련
미국 중심 '호르무즈 호위 연합' 겨냥한 무력시위
수니파-미국 vs 시아파-중·러 구도 확립되는 형국
박원곤 "이들이 이합집산하는 건 미국 견제 의도"
김한권 "항행의 자유 작전까지 동참 요구 우려"
김열수 "일본처럼 이란을 설득하려는 노력 필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내년 초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군을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란이 중국·러시아와 연합 해상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우리 군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과 함께 활동할 경우 이란 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게 됐다.
이란군은 중국, 러시아 해군과 함께 28일부터 4일간 인도양과 오만만에서 연합 해상 기동 훈련인 ‘해양 안보 벨트’ 훈련을 실시한다고 26일 밝혔다.
특히 오만만은 호르무즈 해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만만이 훈련지로 정해지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훈련이 미국 중심으로 결성된 ‘호르무즈 호위 연합’을 겨냥한 무력시위라는 해석이 나온다.
호르무즈 호위 연합은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결성됐다. 지난해 이란 핵 합의 파기 이후 이란과 사사건건 부딪쳐왔던 미국은 지난달 7일 ‘국제해양안보구상(IMSC·호르무즈 호위 연합)’ 지휘통제부 발족식을 열고 대 이란 순찰에 착수했다. 영국과 호주, 사우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알바니아 등 6개국이 참여했다.
우리 정부도 이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우리 군을 파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8월부터 파병을 요구해왔고, 우리 정부도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 있는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호르무즈에 파병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파병을 통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낸다는 복안도 있었다.
정부는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더라도 호르무즈에 파병하는 게 전략적 관점에서 손해보다 이득이 많다고 판단했지만,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과 보조를 맞추면서 상황이 급격히 달라지는 모양새다.
이란으로선 미국과의 대립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다. 이란은 중동 내 세력 구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현재 중동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와 미국 등 서방세력’ 대 ‘이란 등 시아파와 중국, 러시아’의 적대 구도가 형성돼있다. 이란은 이 구도를 활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나름의 이유로 이란에 손을 내밀고 있다.
러시아는 이슬람 시아파인 시리아에 공군 기지를 보유하는 등 시아파를 통해 중동 내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이런 러시아가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6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러시아는 원래 중동 문제와 관련해 이란과 계속 협력해왔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 중인 중국 역시 중동에서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이란을 활용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군사력에 도전하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뉴시스에 “미·중 (경쟁) 구도에서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중·러 간 군사 협력은 강화돼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3개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중국·러시아와 이란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중국·러시아 정부가 자국 내 시아파 무슬림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단기적으로 이들이 이합집산 하는 것은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고 강대국 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그 반작용으로 중·러가 이란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이란과 중국, 러시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우리 정부로선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졌다.
정부가 호르무즈 파병을 최종 결정할 경우 중국과의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 실제 파병이 이뤄질 경우 미국은 이를 근거로 향후 남중국해에서 실시될 ‘항행의 자유’ 작전에도 참여하라고 우리 정부에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항행의 자유 작전은 중국과 아세안 6개국 간 영유권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실시하는 군사 훈련이다. 미국은 아세안 국가의 대리인 격으로 중국의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는 이 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이 이 정부에 우리 군을 끌어들이려 할 경우 중국은 강력 반발할 게 뻔하다.
중국 전문가인 김한권 교수는 “지난해까지 남중국해에서 실시한 항행의 자유 작전이 이제는 다국적 작전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참여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며 “다국적 항행의 자유 작전 참여는 한중 관계에도 심각한 갈등 요인이 될 수 있어서 앞으로 추이를 잘 살펴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중국과의 갈등을 염려해 미국을 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부터 북한의 군사 도발 위협 등 한미 양국이 공조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우리 정부는 기왕에 파병할 것이라면 이를 미국과의 방위비 협상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미국은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을 올해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로 늘릴 것을 요구하며 그 근거 중 하나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파병을 하면 미국의 무리한 증액 요구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박원곤 교수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대한 동맹국들의 참여도가 굉장히 낮다. 그럼에도 미국 국내에서는 이란의 미군 글로벌 호크 격추 이후로 이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호르무즈에 간다면 미국에는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어차피 파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 정부의 면밀한 검토와 사전 정지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란은 물론 중동 시아파를 달래고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뒤로 빠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참여하긴 하는데 상대방이 이해할 정도의 절차가 필요하다”며 “일본처럼 (호르무즈에) 가더라도 이란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이란이나 시아파 전체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파병 과정에서 벌어질 국회 등에서는 찬반 논쟁은 우리 정부가 뚫고 나가야 할 관문이다.
호르무즈 파병 시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지 여부 등을 놓고 진영 간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 보수 진영은 파병에 찬성하겠지만, 진보 진영은 국회에서 별도의 파병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열수 실장은 “자유한국당은 파병을 지지하겠지만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찬반이 갈라지고 진보 정당은 파병을 반대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다만 민주당은 집권 여당이라 파병 반대를 대놓고 말할 상황이 안 될 것이므로 그냥 수면 밑으로 가라앉혀 끌고 가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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