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국민의 운명이 더 나아지도록 기여할지 고민했다.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헤쳐나가야 할 일이 많다. 경청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였던 지난 2016년 2월18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을 선언했다.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영입 1호 인사였다.
김 차장은 당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의 관계의 질문에 “문재인 대표님은 정부에 있었을 때 비서실장으로 모셨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며 “어제도 통화했다”고 답했다.
입당선언에 이어 곧 20대 총선 인천 계양구갑 선거구 출마를 선언했으나 유동수 전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에게 경선에서 패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컸다.
4년이 흐른 현재 김 차장이 21대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는 3일 김 차장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출마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구성원에 대한 관심은 항상 높다. 업무 특성상 취재진이나 대외적인 행보가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심이 쏠린다. 때로는 이들의 움직임 자체가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차장은 비교적 대중에 익숙한 인물이다. 외교안보 중 외교분야를 맡아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측과의 대화를 주도적으로 맡았고 일본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브리핑 연단에서 ‘청와대의 입’을 자처했다. 김 차장과 FTA 협상을 했던 미국과 일본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김 차장의 브리핑에 대응해야 하는 일본 관료들이 저마다 ‘김현종’을 이야기 한다. 여기에 각종 ‘설’(說)의 주인공으로도 여러차례 올라 여러 의미에서의 ‘문제적 인물’로도 꼽힌다.
김 차장은 주일본 대사관에서 3등서기관으로 근무한 아버지 김병연 전 노르웨이 대사를 따라 어린시절 일본에서 보냈다. 김 차장에서 표현되는 강경한 대일(對日)발언은 유년기 시절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 차장은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딴 위 미국로펌 통상분야 전문변호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1995년 외무부 고문변호사를 맡으면서 외교부와 연을 맺었다. 이어 1998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으로 근무했다.
1999년부터 4년 동안 세계무역기구(WTO) 본부에서 동양인 최초로 법률자문관으로 활약한 뒤 수석변호사까지 올랐다. 2003년 5월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에 이어 2004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 임명됐고 한일 FTA 수석대표 등을 지냈다.
이밖에 WTO DDA(도하개발어젠다) 다자협상 서비스분야 의장,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 아시아국가 그룹 의장, 삼성전자 해외법무사장까지 폭넓은 경험치를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의 인연은 노무현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차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닌 그가 개방형 공무원제도를 통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장관급까지 승진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김 차장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가 대단히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차장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미국·EU·아세안 등 45개국을 상대로 FTA 협상·타결을 주도했다. 그와 반대로 한일 FTA는 ‘제2의 한일 경제병합’이 될 것이라며 노 대통령에게 이를 반대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과는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김 차장과 업무 인연이 닿았다. 김 차장은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특명전권대사도 역임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선 패배한 뒤 김 차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캠프 외교 자문그룹인 ‘국민아그레망’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어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30일, 김 차장을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신설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김 차장을 임명했다. 정부 직제상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장관급으로 활동하게 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던 지난해 2월28일, 김 차장을 청와대로 입성시켰다. 국가의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2차장 자리지만 직제상 차관급인 만큼 이례적인 인사로 받아졌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포스트 하노이’를 대비해 미국의 압박에 맞설 ‘강경 카드’로 김 차장을 지목했다.
그러나 북미 협상이 결렬되고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김 차장의 역할은 대일(對日) 대응에 집중됐다. 김 차장은 통상과 외교분야에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던 경험까지 합해 실무 대응을 주도했다. 여기에 직접 스피커로 전면에 나서 여론전을 주도했고 이는 일본과의 ‘기싸움’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도 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직선적인 성격, 특유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김 차장이 각종 ‘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였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당시 김 차장이 맞춤법이 잘못된 외교부 문건을 문제 삼아 외교부 국장들을 몰아붙였고, 같은 자리에 있던 강 장관이 “우리 직원에게 소리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차장이 이에 대해 “잇츠 마이 스타일(It‘s my style)”이라고 답했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차장과 강 장관의 불화설이 커지면서 김 차장이 당시 영어 욕설을 사용했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이는 김 차장이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사과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곧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뉴욕 유엔총회 참석 기간 중 의전 실수를 한 주유엔대표부 소속 외교관이 김 차장의 질책을 받고 무릎을 꿇었다는 질의가 나오며 또 한차례 회자가 됐다.
최근에는 김 차장 산하의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과 정책 노선을 두고 불화설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 차장을 임명한 날 안보실 1차장 산하 평화군비통제비서관이었던 최 비서관을 신설된 2차장 산하의 평화기획비서관에 다시 임명하면서 김 차장과 최 비서관은 직속 상관·소속 비서관으로 일하게 됐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제자이자 강경화 장관과 ’연정 라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인 최 비서관이 남북 관계, 미국과의 관계를 두고 의견이 부딪힌 가운데 직속 상관인 김 차장을 보고라인에서 건너뛴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 갈등설의 내용이다.
이런 가운데 3일 김 차장의 사의표명설과 총선 출마설이 불거졌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김 차장이 정치에 꿈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기에 제의가 있었다는 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차장이 당에서 출마 제의를 받은 사실이 있냐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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