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집합이 없어요. 교집합이. 같이 ‘생태계’를 언급했지만 둘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죠.”
과학기술 남북협력 분야 연구와 사업을 20여 년간 해 온 한 박사가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와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언급된 단어인 ‘생태환경’(ecological environment)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같은 단어지만 초점은 달랐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 1일 연례행사로 발표해오던 신년사를 전원회의 결정문으로 대체했다. 결정문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주 언급해오던 무기 개발, 경제 발전 외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결정문 세 번째 항목이다. 여기에는 “생태환경을 보호하며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위기관리체계를 세울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 대통령도 지난 7일 신년사를 발표할 때 남북협력을 강조하며 ‘생태계’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는 생태와 역사를 비롯해 남북화해와 평화 등 엄청난 가치가 담긴 곳”이라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는 우리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로 북한의 호응을 바란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생태는 DMZ의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언급된 말이다.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 온 것이니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명쾌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언급한 생태 환경의 구체적인 내용은 결의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통상 생태환경 보호와 자연재해 대응은 쾌적한 환경을 꾸미거나 보호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생태환경 보호는 ‘산림 보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산림 복원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주 강조해 온 분야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직속으로 산림정책 총괄 직책을 신설해 위원장을 직접 맡았다. 산림 협력 사업은 남북대화의 단골 주제이기도 했다. 지난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간 ‘산림협력 분과회담’이 두 차례 열렸으며 ‘9·19 평양공동선언’에는 자연생태계 보호와 복원을 위한 환경협력 추진의 합의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이처럼 산림 문제를 부르짖는 이유는 산림의 황폐화가 결국 농업·임업·수자원 문제에도 영향을 주어서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 산림의 황폐화를 극심하게 겪어야 했다. 자연적인 복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북 제재의 장기화로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리고 황폐화된 산림을 빠르게 복구하지 못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타격을 받는다.
자연재해 해결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부족으로 북한의 곡창 지대가 가뭄이나 홍수로 망가져 곡식 생산에 영향을 받는 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김 위원장이 생태 환경과 자연재해를 강조한 것은 결국 ‘풍요로운 가을’을 원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상징적으로 DMZ의 생태 문제를 언급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먹고사는 문제’, 즉 자력갱생을 위해 생태보호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셈이다. 뭔가 서로 주파수가 맞지 않은 느낌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시그널은 아쉽게도 맞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지향점은 같았으면 좋겠다. 지향점이 같다 보면 결국 생태 환경과 자연재해를 위해 남북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생태환경 보호 문제는 결국 남북 모두의 자산을 보호하는 문제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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