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연설문 전문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문재인 대통령님 모시고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임종석입니다.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이 더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산에도 많이 다니고 요리도 하고, 또 한반도의 평화와 새로운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평화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이기도 했지만, 저희가 준비하지 못한 미래의 시간에 대한 고민도 컸습니다. 저처럼 민주화운동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정치에 나섰던 이른바 386세대들은 젊은 날의 기여보다 사실 충분한 보상을 받았고 명예를 얻었습니다. 이런 저런 논쟁 끝에 얻은 소중한 깨달음은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당의 정강정책 첫번째 연설을 준비하면서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 가지 입니다. 미래세대에게 평화를 넘겨주자. 과거를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증오와 대결이 아니라 성공한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승계는 과거의 짐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전쟁의 폐허와 잿더미 위에서 우리 국민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성공을 이루었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왔습니다. 굴곡 많은 현대사와 어지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우리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첫째 대한민국은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 2019년 IMF 기준, GDP 11위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둘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되었습니다.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뤄지고 새로운 개혁이 제도화되고 있습니다. 셋째 대한민국은 문화의 선도국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류를 넘어 다양한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슴 한 켠에 지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70년의 성공을 100년으로 이어가고, 산업화와 민주화, 문화의 성공을 더 큰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꼭 넘어서야 할 커다란 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산을 넘어서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도약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할 지도 모릅니다. 북핵 리스크, 코리아리스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오늘 드리고 싶은 한 가지 애기는 미래 세대에게 분단의 과거 대신 “평화의 미래를 넘겨주자” 입니다. 2018년 4월27일 저는 대통령님을 모시고 하루종일 판문점에 있었습니다. 정상회담장에서 대통령님 옆에 배석하여 북측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과 태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찬장에서는 함께 밥을 먹었고 술잔도 나누었습니다. 두 정상의 도보다리 대담에서 증명되지만, 통역되거나 번역되지 않은 우리의 언어를 공유한다는 것은 순식간에 가장 가까운 진실까지 접근하는 마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 속을 다 알 수는 없으나 솔직하고 대담한 리더였습니다. 협상에 임하는 그의 의지는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경제중심으로 가겠다는 확고한 자세로 인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더불어 우리 대통령님을 존중하고 정성을 다해 설명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날을, 우리 정부 안에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불가역적인 평화의 시대를 시작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날로 기억합니다. 2018년 가을, 저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서 서울에 남았습니다. 정상회담이 있던 9월19일, 청와대에 남아 수시로 평양 상황을 보고 받으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반신반의했던 것은 능라도 연설이었습니다. 평양 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대중연설이 실행될 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 되는 것이 가능한 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생중계가 연결되자, 능라도 경기장에는 15만여 평양시민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우리와 체제가 다른 북측이 전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을 실시간으로 공개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우리 대통령님의 연설 내용에 대해 사전에 어떤 질문도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오천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혜어져 살았을 뿐이라며 평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15만 평양시민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습니다. 2018년 5월26일 토요일 오후에 북측 통일각에서 옆동네 마실가듯 만났던 두 번째 정상회담도 있었고, 싱가폴 센토사섬에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도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해 6월,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함께 만나는 극적인 순간도 있었습니다. 한반도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우리정부의 노력은 그렇게 지속되었지만, 지금은 잠시 멈춰 서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시, 2017년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북미대화가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은 2017년과 달리 양자간 대화 채널이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대만큼 활발하지 않지만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여전히 가동중이며, 9.19 군사합의에 따른 상호적대행위 중지, GP 및 해안포 철수 등의 약속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한 해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남북이 함께 할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습니다. 첫째, 8천만 겨레의 안전을 위한 접경지역 협력 둘째,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와 도쿄올림픽 공동입장 및 단일팀 구성 셋째,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넷째,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다섯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를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도 거듭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야구로 말하면 묵직한 직구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신년사에서 밝힌 방안은 어떤 수사가 아니라 전략이고 철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입구를 만들 때 우리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통일운동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실 통일이란 말이 국민들 정서, 특히 젊은 세대들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저도 통일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과정으로서의 평화가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통일은 스스로 필요에 따라 결과로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가까이에서 대통령님의 인내와 절제를 보면서 우리들의 평화원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평화 프로세스의 원칙들은 신뢰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을 앞세울 때 전쟁이 오고 평화를 위해 노력할 때 전쟁은 문 앞에서 멈춰섭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협상론을 정리한다면 이렇습니다. 첫째 협상의 제1원칙은 협상을 깨지 않는 것이다. 둘째 상대방을 존중한다. 셋째 만날 수록 위험은 적어진다. 직접 만나라. 넷째 상상력과 담대함으로 돌파한다.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이러한 원칙과 자세를 갖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는 오늘날 국익과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정권 초기 일화가 생각납니다. 트럼프 정부와 첫번째 한미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당시에 첫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맥매스터 였습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회담을 다녀와 하는 말이 맥매스터 보좌관이 “다음에는 집에서 만나서 격의없이 편하게 얘기합시다"라는 겁니다.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의례적인 인사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대통령께서는 바로 가서 얘기를 해보라고 지시를 하시는 겁니다. 정 실장이 미국으로 날아갔고 맥매스터 보좌관 집에서 냅킨에 메모까지 해가며 아주 긴 시간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한미간 초기의 긴장관계를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접촉하면 가까워지고 이해하면 관계는 나아지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정권 초기였습니다. UAE와 어려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기업들에게 직접적 피해가 오고 있고 더 커다란 피해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신호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통령께 외교특사를 보내자고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대통령께서는 이 문제는 외교관이 아니라 정치인이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저를 특사로 지명하셨습니다. 왕세제를 만나 대통령님의 뜻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위기를 넘겼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는 절실한 의지와 전략적 판단, 그리고 상대에 대한 좋은 자세와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험난한 길이지만 아니 갈 수 없는 길이고 인내하고 인내하고 절제하고 절제하면서 가야할 길입니다. 정부를 믿고 대통령을 응원해주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하는 민주당은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평화경제를 장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체된 한국경제를 우물 밑에서 끌어올릴 두레박 같은 전략입니다. 지금 민생 어려운 데 무슨 남북관계 개선이냐가 아니라 민생을 위해서라도 30년을 내다보는 미래의 청사진이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경제는 민생경제와 미래경제를 잇는 가교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년 전 가난하고 상처받은 대한민국이 세계의 주목과 존경을 받는 나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과거에도 위대했고 지금도 위대하고 앞으로도 위대할 것입니다. 우리 기업 역시 과거에도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놀라운 성과를 이루고 있으며 미래에도 이겨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뚜렷한 한계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인구 5천만의 내수시장 규모와 한반도 남쪽에 갇힌 구조로는 우리가 최선을 다 한 다 해도 현실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습니다. 디지털 혁신경제로의 전환과 함께 반드시 우리는, 이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 길은 누가 독점하거나 누구를 배제하는 길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걸어온 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대통령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북방정책이 함께 해온 길입니다. 담대한 구상과 새로운 비전, 남과 북을 잇는,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여는 그것을, 우리는 한반도신경제 구상이라고 부릅니다.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일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철도를 연결하는데 규제물자가 들어간다고 걱정하면 작은 못 하나도 못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철도를 타고 새로운 기술, 문화, 생각이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철도와 도로를 통해 동북3성까지 2억 플러스 내수시장을 창출하고 육로로 중국과 아세안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기차가 달리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연결된 도로와 철도를 타고, 우리 기업과 사람들이 평양으로, 남포로, 원산으로, 청진으로 가야 합니다. 개성공단에서 보듯, 남북의 경제협력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길을 따라 마음껏 세계로, 미래로 질주해야 합니다. 어러운 일이지만,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평화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방향과 속도를 잘 조절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와 민주당의 평화정책에 힘을 실어주시기 부탁말씀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내일 모레가 민족명절 설 입니다. 시리고 추운 일 하시는 분들 생각하면 그래도 날이 따듯해서 다행입니다. 저는 요즘,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 케이블 TV에서 남쪽의 여성과 북쪽의 군인이 연애를 하는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북쪽 군인이 불시착한 한국 여성에게 첫 끼니로 옥수수 국수를 끓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격세지감입니다. 이념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인지상정, 휴머니즘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가족, 그리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따뜻한 한 끼 나누는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좋은 설 명절 잘 보내십쇼.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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