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독자 파병’ 결정에 따라 왕건함(청해부대 31진·4500t급 구축함)은 21일 오만의 무스카트항에서 강감찬함(30진)과 임무 교대 후 제반 준비 절차를 마치는 대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본격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군 스스로 작전을 지휘 및 결심해서 우리 선박과 교민 보호 작전에 나서는 것. 군 소식통은 “연락장교가 IMSC에 파견돼 협조 절차를 조속히 갖출 경우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파병 임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독자 파병’이 우리 국민·선박 보호, 안정적 원유 수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동시에 한미동맹과 이란과의 관계도 종합적으로 검토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2만5000여 명의 현지 교민과 우리 원유 수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을 두루 감안했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 선박이 연 170여 척, 900회 이상 지나간다.
왕건함은 출항 전 호르무즈 파병에 대비해 대공·대잠 무장을 크게 강화했다고 군은 밝혔다. 아덴만 해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화력을 지닌 이란군과의 교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다는 얘기다. 군 안팎에선 이란 혁명수비대의 잠수함 전력과 친이란 민병대의 드론·미사일 공격 등이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왕건함은 적기를 요격할 수 있는 SM-2 대공미사일과 단·장거리 대잠어뢰(청상어, 홍상어)를 수십 발 더 장착하고, 잠수함 음탐장비도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왕건함은 대함·대공·대잠 능력을 갖췄고, 청해부대 파병 횟수(6회)도 가장 많은 데다 왕건함 장병 300여 명 가운데 72명이 청해부대 근무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은 기존 아덴만 일대(1130km)에서 오만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약 3.5배(약 3966km)로 길어진다. 청해부대의 기항지도 기존 오만 남쪽의 살랄라항에서 북동쪽으로 850여 km 떨어진 무스카트항으로 변경됐다. 호르무즈 해협과 더 가깝고, 군수 적재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전 구역이 대폭 늘어난 만큼 임무도 가중될 소지가 크다. 아덴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동시에 상황이 터질 경우 즉시 대처에 차질을 빚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은 연락장교를 IMSC 본부(바레인)에 파견해 호르무즈 해협 관련 정보 공유와 함께 필요시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 국민·선박이 위기에 처했지만 청해부대의 적시적 대응이 힘든 경우 또는 청해부대를 겨냥한 기습 상황 등이 발생할 경우 IMSC 소속 타국 군의 지원을 받겠다는 것이다.
군이 이날 국회에 보고한 관련 자료에도 ‘광범위한 해역에서 상황 발생 시 신속 대응을 위해 IMSC로부터 용이하게 전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협조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독자 파병의 한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군은 이날 브리핑과 관련 자료에서 ‘파병’이 아닌 ‘파견’ 용어를 고수했다. 청해부대의 ‘독자 파병’도 ‘파견 지역의 한시적 확대’라고 표현했다. 한미동맹과 대(對)이란 관계를 고려한 것과 동시에 이번 결정이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 작전에 한국의 ‘팀(IMSC) 참여’를 적극 원한 미국이 ‘독자 파병’에 서운한 속내를 가질 경우 파병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지적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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