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무난하게 굴러갔던 미래통합당의 총선 로드맵이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라는 복병을 만났다.
김 전 위원장이 13일 공천 작업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전격 사퇴를 발표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서울 강남병 공천(김미균 시지온 대표) 논란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동안 자신을 겨냥한 영남권의 비토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공천 비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강남병 후보 추천을 철회한다.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오늘부로 공관위원장직을 사직한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모든 화살을 나한테 쏟아라. 화살받이가 되겠다”며 “이석연 공관위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하기로 했다. 공관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퇴 결정이 김종인 전 대표와 연관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전혀 관계없다”고 했다. 김 전 대표가 문제 삼은 서울 강남갑(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강남을(최홍 전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사장) 공천 변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공천은 이미 끝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렵게 영입을 하면 사천(私薦)이라 그러고, 옛날 사람이나 경륜 있는 분을 추천하면 ‘이거 뭐 돌려 막기냐’ 이런 식”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날 공관위가 김미균 대표에 대한 공천을 발표한 후 김 대표의 페이스북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 선물 게시물 등에 대한 제보가 당으로 다수 접수되며 ‘친문 논란’이 일자 김 전 위원장의 고심이 깊어졌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의 추석 선물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다정한 선물을 받았다” “편지를 여러 번 읽어봤다”고 썼다. 또 2016년 12월에는 시지온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원 촛불집회를 지상파 방송사와 라이브 중계하는 데 기술 서비스를 제공했고, 정권이 바뀐 뒤에는 문 대통령의 핀란드 순방길에도 동행했다.
김 대표는 공관위 면접 당시 민주당과도 비례대표 또는 지역구 출마를 논의했던 전력 때문에 공관위원 사이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한 공관위원은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여러 경로에서 추천이 들어온 인재라는 점과 여성, 청년, 기업가 상징성을 더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관위 관계자는 “12일 밤에 공천을 철회해야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김 전 위원장의 사퇴 기자회견 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하루아침에 문빠가 되어 있더라”며 “전혀 아니다. 기업인으로서 정치 교류를 했던 것이지 누군가 강하게 지지했던 게 전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40분 뒤 기자회견에서 곧바로 공천 철회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초반 현역 컷오프를 위해 조용히 물밑 작업으로 불출마를 설득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공천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물갈이 대상이 된 영남권 의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일부 인사에 대한 ‘사천 논란’으로 공격을 받았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사퇴 결정으로 강남병 공천 철회, 사천 논란, 컷오프 잡음을 한꺼번에 묻고 자신의 공천 결과를 지켜내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선대위원장으로 유력한 김종인 전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 공관위 관계자는 “그동안 공관위가 미래지향적 공천을 해왔는데, 과거 지향적인 인물에게 바통을 넘겨선 안 된다. 김 전 대표의 정체성은 민주당에서 의원을 지내고 대통령 후보를 꿈꾼 사람 아니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김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 간 갈등 구도가 표면화된 만큼 총선 판도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합당 관계자는 “선대위 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집안싸움이 커지면 그동안 컷오프 등 당 쇄신 노력이 잊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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