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을 의원 시절부터 보좌해 온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서울 구로을에 전략공천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현역으로, 지금껏 내리 3선을 하며 닦아놓은 민주당 텃밭이다.
이에 통합당은 비박계 소장파이자 혁신적 이미지의 현역 3선 의원 김용태 후보를 맞상대로 내놓았다. 양천을 지역구 현역으로, 이번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그의 인지도와 개혁 성향을 믿고 윤 후보를 겨냥해 차출한 것이다.
구로을을 소개할 때면 ‘복심 대(對) 자객’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살벌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두 후보지만 정작 구로을 주민들에게는 모두 생소한 이름이기 십상이다.
윤 후보는 이 지역에 처음 얼굴을 내민 정치 신인이고, 김 후보 역시 이 동네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다.
유권자 장모씨(28)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콜센터 빌딩 사진을 보다가 벽에 걸린 윤 후보의 현수막을 보고서야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장씨는 “어차피 저희 가족도 매번 민주당 찍어왔고, 저도 민주당 후보 찍을 것”이라며 “미래통합당은 진짜 누가 나오는지 더 관심 없다”고 말했다.
후보의 이름도 낯설고, 코로나19 때문에 선거운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니 민심은 인물보다 정당에 대한 판단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김 후보가 불리한 여건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불 때도 구로을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곳이다. 당시 박 장관은 5만523표로 강요식 새누리당 후보의 2만9407표, 정찬택 국민의당 후보의 1만1777표를 가뿐히 넘어섰다.
신도림동·구로동·가리봉동을 관할구역으로 둔 구로을은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당시는 구로병)부터 16대 이승철 한나라당 의원을 빼고는 내리 민주당 계열 정당의 의원을 배출했다.
이 의원조차 장영신 새천년민주당 당선인이 의원직을 상실하자 재보궐 선거로 당선된 사례였다.
지난 23일 뉴스1은 아침 출근길 구로역과 대림역을 찾아 두 후보의 출근인사를 살폈다.
구로역에서 AK플라자로 향하는 통로에서 ‘나홀로 인사’ 중이던 윤 후보는 연신 시민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국회의원 후보 윤건영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를 반복했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최대한 목소리도 크게 안 내려고 한다”고 조심스러운 선거운동 분위기를 전했다.
지나가는 시민들 대부분은 바닥이나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걷거나 ‘코로나19 함께 이겨냅시다’라고 적힌 윤 후보의 피켓만을 흘끗 쳐다볼 뿐이지만 가끔은 먼저 다가와 윤 후보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한 20대 남성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신 거냐”고 묻자 윤 후보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남성과 무언의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한 중국인 동포는 윤 후보에게 “내가 영주권을 보유한 지 20년째인데 당신을 뽑을 수 있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윤 후보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들 역시 윤 후보의 개인에 대한 호감보다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구로동에 30년째 거주 중이라는 구로디지털단지 인근 오피스텔 경비원 고모씨(72)는 “박영선 장관 뒤를 이어서 하는 거니까 저는 무조건 윤건영 팬”이라며 “굴뚝사업하던 구로공단이 없어지고 화이트칼라로 다 바뀌니 구로가 얼마나 좋아졌냐. 민주당이 지금처럼만 해줬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에 애정을 드러냈다.
구로동에 59년째 거주 중이라는 자영업자 박모씨(65)도 “당연히 윤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여당이 잘하니까 계속 뽑는 것”이라며 “야당에선 제대로 된 인물을 보낸 적도 없다. 김용태 의원은 선거운동을 하긴 하는건지, 내 눈에 보이지도 않더라”고 했다.
윤 후보는 최근 선거 사무소를 신도림동 코리아빌딩에서 박 장관 지역사무소가 있던 구로동의 한 건물로 옮기며 ‘구로는 이깁니다. 힘이 되는 사람 윤건영’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윤 후보는 “이번 선거는 코로나19를 누가 잘 이겨내는지 판단하는 성격을 지닐 것”이라며 “국민들은 여당이 혹은 야당이 최선을 다하는지, 누군가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등의 태도를 보고 투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시각 ‘복심보다 민심’을 구호로 내세운 김용태 후보도 대림역 3,4번 출구와 연결되는 통로에서 “안녕하세요 저 김용태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를 반복하는 조용한 출근인사를 하고 있었다.
김 후보의 출근인사에서는 용기를 낸 ‘샤이 보수’ 유권자를 여럿 볼 수 있었다.
버스 한 대가 대림역에 도착할 때마다 20여명의 시민들이 김 후보를 지나쳐 갔는데, 이 중 2~3명은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한 20대 여성은 김 후보를 향해 양팔을 들어 화이팅을 외치는가 하면, “힘내세요”라고 말하거나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한 고령의 남성은 김 후보에게 직접 다가와 “나라 경제가 완전히 엉망이 됐다. 이번에는 통합당이 돼야 한다. 꼭 당선되시라”는 격려하기도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숨어 있는 샤이 보수가 결집하고, 무당층의 표심이 쏠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판세가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구로동에 50년 거주했다는 택시기사 김모씨(70)는 “아직 누구를 찍을지 정하지 않았다”며 “박영선 의원이 딱히 구로 발전을 위해 한 게 없다. 특히 남구로역부터 가리봉동 쪽은 중국 동포들만 많아졌고 발전이 하나도 안 됐다”고 하소연했다.
김 후보는 “상대 후보보다 뒤늦게 출마한 탓에 아직 제가 구로을에 출마했는지 아는 분이 전체 유권자의 반의반도 안 되는 듯하다”며 “경제를 완벽하게 바꾸기 위해 유권자들이 정권을 심판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물론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김 후보를 훌쩍 앞서고 있다.
서울경제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20~21일 구로을 주민 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후보는 40.9%로 김 후보(22.9%)를 오차범위 밖에서 크게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윤 후보는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신경쓰지 않고 더 낮은 자세로 열심히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김 후보는 “검증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4월이 되면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를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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