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는 서울 강남갑의 이번 4·15 총선 대진표는 흥미롭게 꾸려졌다.
강남갑 도전이 두번째인 전남 출신 전직 4선 의원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여당 후보로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 다시 한표를 호소한다. 미래통합당에서는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의 ‘엘리트 탈북민’ 태영호(태구민) 예비후보가 이에 맞서 표밭을 누빈다.
현역 의원인 3선의 이종구 미래통합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지역구에서 남쪽과 북쪽에서 달려 온 두 후보가 마주친 셈이다.
15대 총선부터 20대 총선까지 내리 보수정당 후보가 승리해온 강남갑이지만 이번 총선은 쉽게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부동산으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나는 강남갑이기에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할 게 없는 지역구 특성이 있지만, 북한 출신 후보에 대한 ‘반감’도 상당해 민주당에선 이번에야말로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강남갑은 논현1·2동 압구정동, 신사동, 역삼1·2동, 청담동 등 대표적 부촌 지역이다. 보수세가 강하다보니 과거 총선에서는 통합당 전신인 한나라당, 새누리당 후보들이 6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19대 총선때는 새누리당의 심윤조 후보가 65.3%라는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이종구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54.8%, 김성곤 민주당 후보가 45.2%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두 후보 간 격차가 10%포인트(P) 이내로 크게 줄어드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논현동과 역삼동 등에 젊은 직장인들이 분포하게 되면서 민주당 표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김성곤 후보는 지역 기반인 호남을 떠나 처음 강남갑에 출마한 20대 총선에서 45%가 넘는 득표율을 얻자 희망을 보고 지난 4년간 지역 밑바닥부터 다지는 밀착 행보를 해왔다.
김 후보는 강남갑의 최대 현안이자 여당의 최대 약점인 부동산 문제에서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 김 후보는 “투기목적이 없는 1가구 1주택자나 장기보유자와 실거주자, 고령자분들의 종부세는 낮추는 것이 맞고 이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의 강점은 4선 의원(15대·17대·18대·19대)을 지낸 풍부한 정치경험이다.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풍부한 정치적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정치 신인인 태 후보와의 차별점이다. 다선 의원 출신에 힘 있는 집권 여당 후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김 후보는 “저는 4선 의원이라는 경험이 있고 검증된 사람이지만 태영호 후보는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경력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당보다 사람을 봐달라는 인물론에 방점을 찍었다. 김 후보는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강남도 정당보다는 사람을 보고 투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에 맞서 ‘뉴페이스’인 태영호 후보도 최대 현안인 부동산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태 후보는 “세금폭탄 문제를 해결하고 재건축 문제를 풀겠다”며 부동산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태 후보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대한민국 자유시장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며 “가장 다급한 것은 세금폭탄 문제와 부동산 규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지역은 특히 연령이 높은 고령자들이 많은데 너무 많은 세금을 내게 됐다”며 “특히 43년 이상 된 아파트가 대단히 많은데, 이분들에게는 재건축 문제가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개선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차원이기에 그런 규제들을 빨리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흔들리지 않는 대북·외교정책을 앞세워 보수성향 유권자에 호소한다는 전략도 펴고 있다. 태 후보는 “굴종적이지 않은 대북·외교정책을 하겠다”며 “이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가 너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민주당 후보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압구정동 대단지 아파트에 거주하는 40대 남성은 “무조건 2번을 찍겠다”며 “태영호 후보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 표를 줄 정도는 아니다.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강남구청 민원실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강남에 집이 있는 게 죄는 아니지 않느냐”며 “공급을 늘려야지 세금만 많이 때린다고 해결되느냐. 민주당은 절대 찍지 않을 생각”이라고 정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통합당이 태 후보를 공천한 데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았다.
청담사거리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아무리 강남이 보수당으로 나오면 당선이라고 해도 우리 동네와 아무 연관이 없는 태영호 후보를 공천한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며 “너무 우리를 만만히 본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압구정동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는 40대 남성도 “태영호 후보를 비례 1번이면 모를까, 우리 지역 후보로 공천한 것은 의아하다”고 했다.
다만 태 후보가 출마함으로써 이번 강남갑 선거가 전통적인 이슈인 부동산 문제 외에 안보 문제로 확장될 가능성도 엿보였다. 지역 기반이 부족한 태 후보가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리마호텔 근처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나라가 공산화되는 게 싫다”며 “태영호 후보는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고, 청담 진흥아파트 근처에서 만난 70대 남성도 “사선을 넘어온 사람인데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겠나”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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