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류적 대재앙 단기간 해소 안돼 우리 전진에 장애 조성'
주말 정치국회의서 당, 국무위원회, 내각 공동결정서 채택
'정치국 복귀한 김여정, 김정은 유고시 대행할 것' 분석도
지난 주말 북한에서는 노동당 정치국회의와 최고인민회의 등 중요회의가 열렸다.
정치국회의는 11일, 최고인민회의는 12일 열렸다. 당초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를 지난 10일 개최할 것으로 공고까지 했으나 아무런 설명없이 이틀 늦게 열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 NK’는 14일, ‘평양에 집결해 대기하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가운데 ’코로나 19‘ 의심환자 7명이 나와 부득이하게 일정을 미룬 것’이라고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이 37.4℃ 이상의 발열증상이 있어 격리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회의에 불참하고 격리된 상태인 것으로 데일리 NK는 전했다.
통상 최고인민회의가 열리기 2~일 전부터 노동당 정치국회의와 노동안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이 열리는 것이 북한의 관례다. 최고인민회의는 노동당이 결정한 사안을 추인하는 역할만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고인민회의 하루전에야 정치국회의가 열렸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아예 열리지 않았다.
이처럼 중요 절차가 생략됐다는 것은 이번 회의가 중대한 전략적 결정을 하는 계기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코로나 19를 의식해 가급적 회의를 최소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 12일 보도한 정치국회의 결과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코로나 19 대응 방안 ▲2019년 결산과 2020년 예산안 심의 ▲최고인민회의에 제출할 인사안 ▲조직문제(당 인사) 등 4개 안건이 토의됐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정치국회의가 코로나 19 가 ‘전인류적인 대재앙으로 번지는 현실이 단기간에 해소될 수 없고 이같은 환경이 우리의 투쟁과 전진에도 일정한 장애를 조성하는 조건’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국회의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의 일부 과업을 변경하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무위원회, 내각의 공동결정서 “세계적인 대류행전염병에 대처하여 우리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울데 대하여”를 채택했다.
여기서 당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은 지난 연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일동안 연설하면서 밝힌 ‘정면돌파전’을 가리킨다. ‘정면돌파전’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건설을 이루겠다는 것과 전략무기 개발을 통한 군사력 강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히 경제건설과정에서 내각의 역할을 크게 강화할 것을 천명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같은 결정을 집행하는데 있어 코로나 19사태가 장애가 되기 때문에 정책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노동신문 보도문은 공동결정서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국가적인 비상방역사업을 계속 강화해 나가며 올해 경제건설과 국방력강화사업, 인민생활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들과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무력기관을 비롯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의 투쟁과업과 방도가 밝혀져 있다”고 보도했다.
무엇을 어떻게 변경했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코로나 19 사태로 ‘비상 국가운영체제’에 공식 돌입했음을 알 수 있다.
정치국회의는 2019년 결산과 2020년 예산안을 논의했지만 노동신문은 이와관련해 정치국회의에서 결산안과 예산안을 ‘승인했다’는 소식 한줄만 전하고 있다.
우리나 서방 국가, 심지어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예산과 결산안 처리가 이렇게 가볍게 취급되진 않는다. 북한도 정치국회의가 아닌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예산안에 대한 토론과 승인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표면상 예결산 처리가 가볍게 처리된다고만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당우위국가인 북한에서 노동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은 내각이 작성하고 집행한 결산과 새해 예산안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는 북한에서 내각이 관리하는 인민경제가 북한 경제 전체의 30% 미만에 불과할 뿐이어서 비중이 크지 않음을 방증한다.
한편 정치국회의 보도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지만 다음날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제출된 내각의 사업보고에서는 “지난해 내각사업에서 심중한 결함들이 나타났다”는 주목할만한 내용이 포함됐다. “당에서 나라의 경제를 통채로 맡겨주고 국가경제발전의 전략과 방도를 뚜렷이 제시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권한과 수단을 다 부여해 주었지만 경제지도 일군들이 주인구실을 바로하지 못하면 당이 제시한 경제건설목표들을 성과적으로 점령할 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지난 연말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정면돌파전’에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할 것임을 천명했지만 아직 내각의 역할이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내각이 최고인민회의에 제출한 결산보고에서 자아비판을 한 것은 아마도 전례가 없을 것이다. 이와관련 정치국회의에서 김위원장이 이같은 점을 지적하며 내각을 질책하는 한편 한층 더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위원장은 군과 당 등 권력기관에 밀려 내각이 운영하는 인민경제의 비중이 크게 축소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과 군의 중요 인물들을 부패혐의로 해임 또는 처벌하는 일들이 최근 들어 빈번해 진 것은 바로 내각에 힘을 싣는 자신의 정책에 당과 군의 기득권 세력이 반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자신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도 내각은 여전히 당과 군의 권력기관에 눌려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정치국회의에서 다그쳤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주요 간부와 내각의 주요 보직 인선안을 의결했다.
노동당의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최고인민회의는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전혀 없다. 내각의 예결산안도 정치국회의에서 사전에 승인된 뒤에야 채택됐고 국가의 주요 보직도 김위원장 또는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서 추인만 하는 것이다.
그밖에 최고인민회의는 ‘재자원화법’ ‘원격교육법’ ‘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 등 3개 신설 법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이미 북한에서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던 정책들을 제도화한 것에 불과하다. 내각이 관련 정책을 펼때 필요한 절차를 규정함으로써 정책 집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법 위반자들을 처벌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한편 정치국회의에서는 정치국 정위원과 후보위원을 새로 인선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명했다. 김여정은 지난 2017년 10월에 정치국후보위원이 됐으나 지난해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해 4월 정치국회의에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가 이번에 복귀한 것이다.
김여정은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 자기 명의의 담화를 발표하고 청와대를 비난하기도 하는 등 대외정책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국장은 김여정이 “김위원장에게 어떤 긴급사태가 일어날 경우 그를 대신할 매우 강력한 인물로 키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미 라디오프리아시아(RFA)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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