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정치권으로 돌아갔으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겠다”며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다 공식선거운동 기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직함은 없지만 ‘선대위원장’급으로 전국 팔도를 누볐다가 다시 홀연히 사라졌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다.
임 전 실장은 지난 14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서울 종로구 후보의 지원유세를 마지막으로 총선 지원유세를 마쳤다. 그는 14일 당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덕분에 행복했다”라며 “4월16일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감사하다”라는 SNS 메시지를 끝으로 다시 정치권에서 모습을 감췄다.
임 전 실장 측에 따르면 그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이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임 전 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실장은 2017년 5월10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돼 1년9개월 동안 문 대통령을 보필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청와대 관계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었고, 문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 성사시키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둬 ‘거물급 인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1월 청와대를 나온 임 전 실장은 서울 은평구에서 종로로 이사하고 주소지를 이전하면서 종로 출마를 위한 사전 행보로 한때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SNS에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라며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글을 남기고 돌연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임 전 실장의 은퇴는 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총선 전략 ‘브레인’을 맡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나 측근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비가 와서 결행했다’는 말이 언론 보도가 나왔으나 이는 와전된 것으로, 복수의 측근들에 따르면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의 지역구 정리 문제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온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당의 큰 어른이자 대선배인 정 전 의장과 대립 구도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먼저 결단을 내리고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통일 문제’를 민간영역에서 외연을 확장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임 전 실장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도 (출마) 생각도 있었으나 결정한 상태는 아니었다”라며 “당시 여러가지 상황을 봐서 ‘이번에는 좀 저축해 둔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랬던 그가 약 두 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정강정책 방송연설의 첫 연설자로다. 이해찬 대표·이인영 원내대표가 공식적으로 임 전 실장의 ‘역할론’을 띄웠고,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역시 힘을 실었다.
그러나 임 전 실장은 당의 ‘공동선대위원장’ 제안을 끝내 고사했다. 대신 당의 승리를 위해 선거운동을 돕기로 했다.
임 전 실장 측 한 관계자는 “선거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계속) 침묵하는 것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선거를 처음 도전하는 분들에게 우리가 가진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경선준비나 예비후보들에게 임 전 실장이 가서 소주잔이라도 한 잔 부딪혀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임 전 실장은 공식 선거운동 개시 전 전남 목포와 강원 속초 등 후보자들을 만나 ‘선거 경험자’로서 조언을 하고 홍보에 적극 나섰다.
임 전 실장이 공식선거운동 기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연이 있는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서울 광진을·당선)과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중원·당선)이 임 전 실장에게 유세 지원을 요청해왔다.
임 전 실장은 고 전 대변인과 첫 유세로 당초 출근길 인사를 하는 것을 계획했으나 취재진이 몰리는 바람에 유세차 지원으로 변경했다.
잠행을 깨고 선거지원 전면에 나선 임 전 실장에 관심이 쏠리자 전국에서 지원요청이 쏟아졌다. 여기에 이낙연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임 전 실장에게 많은 곳을 가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전국 지원유세가 시작됐다.
임 전 실장은 공식선거운동 기간인 2일부터 14일까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광주, 전남, 충남, 강원, 충청, 포항과 대구 등에서 지원유세를 펼쳤다.
흰머리가 성성한 소박한 ‘이웃집 아저씨’ 모습으로 셀카요청에 환하게 웃으며 응하면서도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했고 직함만 없는 사실상의 선대위원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지난 9일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마친 임 전 실장은 선거 당일인 15일부터는 다시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다.
임 전 실장은 선거 당일 자택 인근에서 지인들과 함께 개표방송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180석 ‘압승’이라는 이번 총선 결과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임 전 실장 측은 “임 전 실장은 마음의 빚을 조금 내려놓은 느낌이고, 오히려 숙제를 한 느낌일 것”이라며 “아쉬운 것도, 서운한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TK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하지 못한 점, 호남과 영남이 극명하게 갈린 결과에 대해 복잡한 마음도 드러냈다고 한다.
평생의 숙원인 통일운동을 위한 마중물을 놓겠다며 제도권 정치를 벗어난 임 전 실장을 정치권이 언제까지 놓아둘지, 이번 총선으로 ‘마음의 빚’을 청산한 임 전 실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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