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좋은 편지’(nice note)를 받았다고 밝힌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북한이 반박에 나서면서 ‘친서논란’이 불거졌다.
청와대도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에게 따뜻한 편지가 왔다는 얘기를 먼저 들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어 약간은 머쓱한 상황에 놓였다.
이번 친서논란 발단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언급하며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최근 ‘좋은 편지’(nice note)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청와대 측에서도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19일 오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에서 ‘김 위원장에게서 따뜻한 편지가 왔다’는 말씀을 (문 대통령이) 질문하기 전에 먼저 꺼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모두 편지를 받은 시점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같은 날 밤 북한은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청와대가 발표한 내용을 전면으로 반박했다.
북한은 “미국 대통령이 지난 시기 오고간 친서들에 대해 회고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근 우리 최고지도부는 미국 대통령에게 그 어떤 편지도 보낸 것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빠른 시간 내 친서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최고 존엄’인 김정은 위원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 이에 경고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이라는 실무 수준에서 담화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점은 일부 ‘수위조절’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미국과 북한 두 정상은 올해 서신 왕래를 2번 이상 한 것으로 알려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김 위원장의 생일을 맞아 ‘생일 축하 친서’를 보냈다. 또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달 22일 담화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발송하고 ‘북미관계 추동 구상’ ‘코로나19 방역 협조할 의향’을 전달한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서신을 주고 받은 것을 김여정 부부장의 입을 통해 공개했던 점을 고려하면 그 이후에 왕래가 없었던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1월이나 3월에 보내진 서신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최근에 다시 꺼내면서 이번 논란을 촉발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이 절제되지 않은 언행을 해왔다는 평가를 감안하면, 발언에서 언급된 ‘최근’가 올해 초인 1월이나 3월을 지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 유지나 상황 관리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서신을 언급했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도 청와대가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남무시 기조가 유지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지난 1월 북미간 김정은 위원장 생일축하 친서 발송과 관련해서도 우리나라에는 머쓱한 상황이 연출된 바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월10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생일(1월 8일) 축하 메시지를 문 대통령이 전해주면 좋겠다고 했고, 이후 (9일 북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남조선의 호들갑’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이라고 비난하는 담화를 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이미 직접 받았다”면서 사실상 대남 무시 발언은 내뱉었다.
한편 이번 친서 논란은 결국 북미대화나 실무협상 등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한번의 헤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인 외교적 결실을 얻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자 하는 의도를 품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친서를 둘러싼 북미간 진실게임은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날 것 같다”라면서 “북한이 하루만에 사실관계를 바로 잡겠다는 것은 최고존엄을 중시하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최고지도자의 친서를 정치적으로 함부로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세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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