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고 지속적으로 정제유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한국 선박도 연루됐으며, 석탄과 모래 등 불법 수출도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북한이 ‘저위험 고수익’이라는 특징을 갖는 사이버 공격에 주력하고 있으며, 유럽에 진출한 북한 축구선수들도 송환 대상 노동자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의 소리(VOA)’ 등 외신들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은 연례 최종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北 정제유 수입과정에 한국 선박도 연루…김정은 ‘벤츠’ 6개국 거쳐 밀반입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정제유 불법 수입과 관련해 외국 선적의 선박들이 북한 남포항에 직접 드나든 정황이 나타났으며, ‘선박 대 선박’간 불법 환적 과정에서 우리나라 선박도 연루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 동안 10개월 간 북한이 수입한 정제유가 안보리가 정한 연간 한도인 50만 배럴의 최대 8배에 달할 것으로 봤다.
전문가패널들은 시에라리온 국적의 ‘센린01’호와 ‘티안유’호, ‘비파인’호 등 외국선박들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 동안 북한 남포항에 총 64회 드나들었다고 밝혔다. 외국 선박들이 10개월 간 운송한 정제유는 56만배럴~153만1000배럴로 추정된다.
특히 6월과 7월, 10월에는 북한 유조선이 정제유를 운반한 횟수보다 외국 선적 선박들이 운반한 횟수가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선박 간 환적을 거쳐 북한에 정유제품이 공급되는 사례도 새로운 유형으로 나타났다.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선박이 공해상에서 또다른 제3국 선박으로부터 정유제품을 공급받은 뒤 북한으로 실어가는 수법으로, 전문가 패널은 정유제품 공급 선박이 수취선박의 목적지를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선박 대 선박’ 환적 조사 과정에서는 우리나라 선박도 연루됐다. 중국 국적의 ‘윤홍8’호는 지난해 7~8월 동중국해에서 한국 선박(선박A)으로부터 적어도 4회 이상 정유제품을 환적했다. 이 중 3회는 윤홍8호의 남포항 기항통지 며칠 전에 이뤄졌다.
다만 북한 선박과 직접 환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니다. 패널보고서에서도 우리 선사가 패널들이 요청한 모든 제출했으며, 조사는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전문가패널의 문의로 선박A의 연루 사실을 인지했다. 정부는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모든 선사들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라도 대북 운송에 관여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계도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전문가패널은 북한이 ‘메르세데스 벤츠’ S 600모델 2대와 ‘렉서스 LX 570’모델을 수입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용하는 벤츠 차량은 이탈리아에서 네덜란드,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까지 8개월간 6개국을 거쳐 평양에 밀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많은 나라에서 사치품으로 지정하고 있는 위스키와 코냑, 와인 등 주류를 지속적으로 수입했다며, 지난해 2월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보낸 보드카 9만 병이 압수됐다고 설명했다.
◇‘中 협조’에 北 석탄 수출 계속…모래·선박조업권 판매도
전문가 패널은 북한이 지난해 1~8월 석탄을 최소 370만톤을 불법수출해, 3억7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5~8월에만 270만톤을 수출해 앞선 1~4월 92만8000톤에서 191% 늘었다는 분석이다.
대북제재위는 지난해 11~12월 북한의 남포항 및 송림항에서 석탄 수출이 이뤄지는 장면이 위성사진에 지속적으로 포착됐다고 밝혔다. 남포항 부두에서 최소 16척, 남포항 일대에서 87척이 목격됐으며, 송림항에서는 최소 17척, 송림항 일대에서는 대략 17척이 석탄 수출에 동원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패널은 중국 선박들이 북한의 불법 활동인 석탄 수출에도 적극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북한 석탄 불법 환적에 관여된 많은 선박 중 눈에 띄는 중국 연관 선박은 ‘라오 추안 장717’호와 ‘푸싱9’, ‘푸싱12’호 등이다.
이들 선박은 북한 선박에 비해 2배, 최대 3배 많은 석탄을 실을 수 있는 대형 화물선이다. 특히 ‘푸싱12’호의 경우 고철폐기 선박으로 시장에 나온 것을, 북한이 석탄 불법 수출을 위해 사들였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규모로 불법 환적이 일어난 장소 역시 중국과 관련돼 있다. 보고서가 공개한 인공위성 사진에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가장 물동량이 많은 항구 중 하나인 닝보 저우산항 앞 바다에 북한 선박이 다수 정박해 있다.
북한은 모래도 수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북제재위는 북한이 지난해 5월 이후 최소 100만톤의 모래를 수출해 2200만불을 벌어들인 것으로 봤다. 황해도 해주, 함경남도 신창산 모래라는 것이 전문가 패널들의 설명이다.
중국 선박에 대한 조업권 판매도 계속됐다. 전문가 패널은 지난 2018년 기준 북한의 조업권 판매 수익이 1억2천만 달러정도 일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한 선원 인터뷰를 토대로, 3개월짜리 조업권이 약 40만위안(약 6886만원)이라고 전했다.
◇北, ‘저위험 고수익 사이버 공격 주력’…축구선수들도 송환 대상 노동자
보고서에 실린 북한의 불법 활동 중 또 다른 분야는 ‘정보기술’ 분야다.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군수공업부에 소속돼 전 세계로 파견된 정보기술 (IT)업계 북한 노동자들이 최소 1000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약 5000달러이며 이 중 3분의 1인 1700달러 정도가 북한에 송금된다는 게 대북제재위 분석이다. IT노동자들을 통해 북한은 연간 약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또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사이버 공격, 특히 금융기관과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 패널은 “특히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저위험-고수익’인 데다가 이를 조사하기 어려워, 북한이 공격 수법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보리가 향후 추가 제재결의를 채택할 경우, 북한의 사이버 수단을 통한 제재 회피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전문가패널은 해외 프로리그에 진출해 있는 북한 축구선수들 역시 노동자로 판단했다. 보고서가 지목한 북한 축구선수는 한광성, 박광룡, 최성혁 세 사람으로, 이들은 모두 유럽 프로축구 팀에 진출해 있다.
한광성은 이탈리아 1부리그 팀인 유벤투스를 거쳐 지난 1월 카타르 리그의 ‘알 두하일’로 팀을 옮겼고 박광룡은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최성혁은 이탈리아 3부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맺은 계약은 모두 안보리가 정한 북한 노동자 본국 송환 기한을 넘긴 것이고, 따라서 대북 결의 위반이라고 전문가 패널은 지적했다.
◇북한 핵활동 계속…“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다변화 완성 과정”
전문가패널은 북한의 핵 활동과 관련해, 2018년 말 이후 영변의 50Mw 원자로에서의 활동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폐쇄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위성 사진을 통해 영변 경수로 인근 건물 신축 작업과 구룡강 준설 활동이 포착됐다. 지난해 평산 우라늄 공장도 가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모두 13차례에 걸쳐 최소 25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을 지적하며 북한이 다양한 종류의 탄도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봤다.
특히 지난해 7월23일 북한이 잠재적으로 탄도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신포-C)을 건설 중임을 공개했다며 “이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주요한 다변화를 완료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이 지난해 12월7일과 13일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전문가패널은 “서해위성발사장의 수직 엔진 시험장 개보수 이후에 이뤄진 미사일 엔진 실험”이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새로운 ICBM 엔진 시험일수도,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기존의 엔진 점검이었을 수도 있다”며 “어느 쪽이든 북한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새로운 국면을 가리킨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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