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상위 30% 위해 나랏빚 내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1일 03시 00분


與 ‘전 국민 지급’ 밀어붙이기 속 김상조와 함께 반대의견 고수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이 한목소리를 내니 보기 좋네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회의 도중 참모들에게 이런 농담을 건넸다. 집권 1기 ‘경제 투톱’이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엇박자를 냈던 것과 달리 이번 재난지원금 국면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정책실장이 한목소리로 반대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19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여당 인사들이 강하게 ‘전 국민 지급’을 주장했지만 홍 부총리는 흔들림이 없었다”고 전했다. 평소 유연한 태도로 여당, 청와대와 잡음을 만들지 않았던 홍 부총리가 유독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건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를 ‘고용’에 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 상위 30%를 위해 나랏빚을 내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여권 내부에서는 “자칫 홍 부총리가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경제 투톱은 행동으로도 반대 의사를 밝혀 왔다. 지난달 찬반 여론이 팽팽하자 문 대통령은 수석급 이상만 참석하는 특별 회의를 소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3시간 넘게 진행된 회의에서 김 실장은 사실상 홀로 지급 범위 확대를 막는 수문장 노릇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회의 분위기가 기울자 결국 김 실장은 항의의 뜻으로 하루 동안 출근하지 않는 ‘결근 투쟁’을 택했다.

4·15총선이 끝났음에도 청와대가 재난지원금 대상 범위 확대에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는 건 이 같은 ‘경제 투톱’의 격렬한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

문 대통령은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여야를 향해 “국난 극복에 협력해 달라”고만 했다. 집권 여당과 경제 투톱 간의 의견차가 큰 상황에서 어느 한쪽 손을 선뜻 들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야가 전 국민 지급으로 합의한다면 “국회 합의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경제 투톱을 설득하겠다는 흐름이다.

그 대신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비상경제 대응 체계를 강화해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되고 범경제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경제 중대본 체제’의 본격적인 가동을 준비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향후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의 경제 컨트롤타워는 홍 부총리라는 의미다. 김 실장 역시 22일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 기업 경영진을 만나는 등 계속 코로나19 극복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한상준 alwaysj@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긴급재난지원금#문재인 대통령#홍남기#김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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