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계자는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방위 협력(defense cooperation)을 위해 돈을 더 내기로 합의(agree)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증액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블러핑(bluffing·허세)’식 발언이 나왔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 “우리는 합의할 수 있다. 그들(한국 정부)은 합의를 원한다”며 “그들은 내가 2017년 1월 취임했을 당시 내고 있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담금’이 아닌 ‘방위 협력’이라고 한 것은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넘어 미국산 무기 구매 등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것이 합의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협상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한미 간에 방위비 인상액을 둘러싼 이견이 여전한 만큼 아직 양국이 합의한 게 없다는 뜻이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나 구체적 행동에 합의했을 때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consent’ 대신 기류나 방향에 동의한다는 뜻에 가까운 ‘agree’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협상에서 결론이 안 난 것을 알면서도 돈을 더 내라고 종용하는 의미로 ‘agree’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말 한미 실무 협상단이 잠정 합의한 13% 인상안을 거부한 뒤 공개적인 증액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0일에는 “우리는 한국에 현재의 불공평한 상태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는 “13% 인상안이 마지노선”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약 13% 인상된) 그 액수가 우리로서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액수”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백악관 모두 완강한 태도를 보이면서 실무 협상 채널 역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한미 수석대표 간 일상 소통을 제외하면 유의미한 협상 관련 소통은 멈춰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협상이 11월 미국 대선 무렵까지도 타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장기전 채비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협력 속도전을 강조한 상황에서 방위비 협상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경우 한국의 협상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대북 제재 위반과 직결되는 남북 철도 연결 등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합의가 필수적”이라며 “백악관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청와대가 협상에서 상당 부분 뒤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협상에 너무 오래 매달려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주한미군은 용병이 아니다”며 “동맹과의 관계 강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돈을 더 받아내려고 한국 측에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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