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미래통합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주호영 의원(5선·대구 수성갑)은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모두에서 요직을 거친 대표적 정책통으로 꼽힌다.
대구 능인고,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한 주 원내대표는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장판사까지 재직하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주 신임 원내대표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20대 총선까지 대구 수성을 지역구에서 연거푸 4선에 당선되는 저력을 보였다. 21대 총선에서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맞상대하기 위해 지역구를 대구 수성갑으로 변경, 당선됐다. 재선 때인 18대 때는 여의도연구소장, 원내수석부대표 등 당직을 역임했다.
주 원내대표는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거쳐 초대 특임장관을 맡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계와 친박계 갈등이 극심한 시기였는데, 주 원내대표가 특임장관으로서 정무 역할을 큰 잡음없이 수행했다.
19대 국회 초반 친박계의 득세로 주 원내대표는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다 19대 국회 중·후반기 ‘신박’으로 거듭났다.
최경환 원내대표 시절 생긴 선진화법 개정 태스크포스(TF)를 이끌며 법적 자문역할을 했다. 2014년 초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에도 앞장서며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도 맡았다.
2014년 5월에는 이완구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당선됐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시절 박근혜정부의 각종 주요법안 추진에 앞장섰다.
또한 같은해 말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총선 전 표 떨어진다”는 이유로 아무도 맡지 않으려 했던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으면서 공무원연금개혁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는 20대 총선 국면에서 벌어진 공천 파동에서 내쳐져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후 복당했다. 이후 당시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 대표로 출마했지만 이정현 대표 등 친박계가 압승하면서 낙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는 새누리당을 탈당, 개혁보수신당(가칭) 초대 원내대표를 맡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바른정당 지도부가 일괄 사퇴하면서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 등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주요 당직은 모두 맡게 됐다.
이후 바른정당과 당시 자유한국당 통합 국면에서 친정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 했다.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이후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및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첫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정무는 물론 정책 능력이 탁월한 논리적·합리적 성품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우’(慈宇)라는 법명을 가진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하다.
가족은 부인 김선희씨와 2남이 있다.
Δ경북 울진(1960년생) Δ대구 능인고 Δ영남대 법학과 학사·석사·박사 Δ사법고시 24회 Δ대구지법·대구고법 판사 Δ대구지법 영덕지원장 Δ대구지법 상주지원장 Δ대구지법 부장판사 Δ제17대·18대·19대 국회의원 Δ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Δ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Δ초대 특임장관 Δ여의도연구소장 Δ새누리당 정책위의장 Δ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장 Δ박근혜 대통령 정무특보 Δ개혁보수신당 원내대표 Δ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Δ자유한국당 문재인 정권 사법장악 저지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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