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교류협력법)을 개정하면서 북한 기업의 한국 진출에 대한 근거 조항까지 마련하려는 것은 남북 협력의 핵심인 경제 분야 협력을 본격화하고 비핵화 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유도하기 위해 대북 경제 제재의 고삐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드라이브가 자칫 이를 무력화하거나 중국 못지않은 대북제재의 ‘구멍’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응도 안 하고 있는데 우리만 일방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北에 “한국 시장 열겠다”는 정부
정부가 이번에 30년 만에 교류협력법을 대폭 개정하면서 강조한 것은 ‘남북 상호주의’이다. 우리 기업이 북에 가서 사업하는 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처럼 북한 기업이 한국 시장에 와서 영리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근거를 국내법에 담겠다는 것이다.
기존 교류협력법에는 북한 기업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 자체가 없었다. 남북협력사업을 정의하며 ‘남한과 북한의 주민이 공동으로 하는 문화, 관광, 보건의료, 체육, 학술, 경제 등에 관한 모든 활동’이라고만 적시했기 때문. 하지만 이번 개정안 초안에서는 ‘경제협력사업(제18조의 3)’ 조항을 별도로 신설해 남북 경협의 범위를 구체화, 세분화했다. 그러면서 남북 기업이 한국이나 북한, 제3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펼치며 영리 추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법에 명시했다. 특히 증권 및 채권 등 유가증권, 토지나 건물, 그리고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 등에까지 북한 기업의 접근을 허용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존 교류협력법에는 우리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는 내용만 반영돼 있었는데 북한이 한국에 올 때도 근거 조항을 마련한 것”이라며 “남북의 기업 활동을 보장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경제협력사업뿐만 아니라 북한 문화기업이나 예술인이 한국에 와서 활동할 수 있는 ‘사회문화협력사업’(제18조의 4) 조항도 새로 포함됐다. △공동조사·연구·저작·편찬 및 그 보급 △음악·무용·연극·영화 등 공동 제작·공연 및 상영 △음반·영상물 및 방송프로그램 공동제작 등이 그것이다. 각종 예술 및 문화사업 부문도 북에 한국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 北 기업 활동 보장까지, 한미 엇박자 커지나
통일부는 남북의 경제·문화 상호 개방 내용을 담은 이번 교류협력법 개정안에 대해 “구체적인 (향후 추진)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단계에서 실행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유엔 대북 제재가 북한과의 기업 합작을 금지(2375호)하고 있고, 북한 노동자의 강제 본국 송환도 의무화(2397호)하는 등 대북 경제 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기업의 자유로운 왕래와 기업 활동을 보장한 교류협력법 개정안이 실현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통일부 당국자는 “쌍방의 경제활동을 트는 개념이 필요하다”며 입법화 추진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 대응이었던 5·24조치를 사실상 폐기한 데 이어 그 후속 성격으로 교류협력법 개정에 나서면서 대북 제재 완화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앞서 미국이 정부의 독자적 남북 협력 강화 움직임에 “비핵화와 보조를 맞추라”고 강조한 바 있어 한미 간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앞서 ‘우회로를 찾는다’며 지속적인 제재 완화 시그널을 보낸 데 이어 이런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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