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취임 인사를 겸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찾아가 만났습니다.
김종인과 이해찬의 만남은 두 사람간의 32년 질긴 인연으로 더욱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선 김종인위원장은 당시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이해찬대표를 컷오프(공천배제)시킨 바 있었고. 이해찬대표는 강력 반발하며 결국 탈당한 뒤 세종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후 민주당에 복당한 적이 있습니다.
32년 전인 1988년 13대 총선에선 김종인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평화민주당 후보였고 정치신인이던 이 대표에게 패한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48세, 이 대표는 36세였습니다. 이 대표는 31.1%를 김 위원장은 27.1%득표를 했습니다.
1988년 13대총선 격전지중의 하나였던 서울 관악을 선거구 선거판세를 동아일보는 다음과같이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冠岳乙(관악을)
民主(민주)의 金守漢(김수한)후보가 6선고지로 진군하고 있는 가운데 民正(민정)은 금융스캔들로 물러난 任哲淳(임철순)의원의 뒤를 이어 경제학자출신金鍾仁(김종인)의원을 내세워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고 이에 平民(평민)은 젊은「행동파지식인」을 自任(자임)하고 있는 李海瓚(이해찬)후보를 포진。
이들 후보자가 주로 中下層(중하층)서민과 빈민들로 구성된 이 지역 유권자들에 접근하는「武器(무기)」도「관록」(民主(민주) 金(김)후보)「지역개발」(民正(민정) 金(김)후보)「정직한 정치」(平民(평민) 李(리)후보)등으로 각 각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상태。
民正(민정) 金(김)후보는 西獨(서독)「뮌스터」大(대) 경제학박사에 黨(당)경제브레인이라는 자신의 學者風(학자풍) 이미지를 토대로 삼고 街人(가인) 金炳魯(김병로)선생의 손자라는「뼈대」를 득표와 연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金(김)후보는 요즘 달동네 등에서 중소규모의 모임을 하루에 10여 차례이상 개최、자신을「지역발전의 견인차」로 부각시키며 분전중。
民主(민주) 金(김)후보는『父子(부자)가 대를 이어 지구당원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할정도로 이 지역에 뿌리깊은 연고를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광범위한 知名度(지명도)를 확보한 상태。
그러나『5선이 되도록 지역발전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는 民正(민정)측의 비난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흘리고있다。
平民(평민) 李(이)후보가 前面(전면)에 내건 구호는「썩은 정치 뿌리 뽑자」。 그는 16년간의 재야 및 학생운동에서 익힌 현실감각을 이곳 영세민의 생활현장에서 확인해보겠다는 자세다。
그는「때 묻지 않은 政治新人(정치신인)」이미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요즘 꽹과리부대를 앞세우고 빈민지역 및 상가방문에 한창인데 조직의 열세를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관심사。
(1988년 4월23일자 동아일보 13면)
기사를 읽어보면 당시 13대 총선 관악을 선거구는 김종인과 이해찬 양후보의 맞대결양상은 아니었고, 5선관록의 민주 김수한후보까지 낀 3파전 이었습니다.
맞대결이건 3파전이건 간에 당시 정치신인 이해찬후보는 6선의 민주 김수한후보와 재선이 민정 김종인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하며 내리 7선의 과업을 이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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