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그동안 침묵하던 정의기억연대 활동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 논란이 위안부 운동 폄훼로까지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담긴 것이다. 당초 청와대는 이날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6일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있었고, 북한의 거센 막말로 대통령의 공개 발언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을 감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직접 메시지를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모두발언을 통해 정의연 및 위안부 운동 논란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혔다.
○ 文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운동의 역사”
우선 30여 년간 전개됐던 위안부운동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여성 인권과 평화를 위한 발걸음”이라고 규정한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너나없이 위안부 진실의 산 증인들”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과 진실 공방을 벌이며 윤 의원의 사퇴를 강도 높게 촉구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는 실명을 거론하며 “이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미 하원에서의 첫 위안부 연설, 프랑스 의회 증언,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활동 등 이 할머니의 활동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했다. 반면 윤 의원이나 정의연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2017년 8월 광복절 경축식을 시작으로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방한 국빈만찬, 2018년 위안부 생존자 초청 오찬 및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 지난해 3·1절 100주년 기념식 등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 많은 행사에 함께해 왔다.
또 문 대통령이 이 할머니를 언급한 것은 한일 갈등의 단초인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의 동의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강조해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는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에 이르지 못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위안부 존재와 관련 운동 자체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며 “피해자 할머니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이다. 위안부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라고 했다.
○ “기부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 강화해야”
문 대통령은 이어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연의 회계 부정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윤 의원과 정의연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투명성 언급 속에 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과 정의연 활동의 공(功)과 과(過)가 동시에 있고, 회계 부정 등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21대 국회에서 기부금통합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관련 입법과 조치를 강구해 나가겠다”며 “기부금과 후원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이번 논란으로 위안부운동의 역사가 부정당하거나 평가 절하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 발언에 앞서 윤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의 의원회관 앞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내가 죽는 모습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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