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물고문 욕조서 눈 떼지 못한 文대통령…“이곳 자체가 공포”

  • 뉴스1
  • 입력 2020년 6월 10일 11시 30분


2017년 이후 두 번째 참석…현직 대통령으로 세 번째
고문 흔적 밴 '남영동 대공분실'서 33회 기념식 거행
6·10 기념식에서 합동 훈장 수여는 처음…12명에 친수
현직 경찰청장 최초 참석…"잘못된 공권력 반성 의미"
이한열 열사 어머니, '33번째 보내는 편지' 편지 낭송
현직 대통령 중에 박종철 열사 고문실 방문은 처음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고(故)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을 방문해 박 열사 영정에 헌화했다. 대통령이 권위주의 시대 고문과 인권 탄압의 현장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조사실을 방문해 헌화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서울 용산구, 현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후 대공분실 내부로 이동했다.

유동우 민주인권기념관 관리소장은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것인데, 어떻게 하면 연행돼 온 사람들이 완벽한 고립감을 느끼고 공포감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방향으로 설계가 됐다”고 설명했다.

입구는 철제 출입문과 방호문 등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 피해자들은 눈이 가려지고 포박된 채 끌려와 마치 탱크가 굴러가는 굉음을 내며 열리는 문을 통과하며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문 대통령은 철제문을 세게 밀었다. 철문은 ‘쿵’하고 소리를 냈다. 이어 문 대통령 내외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계단 앞에 섰다. 계단은 1층에서 5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형태로,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가팔랐다.

당시 피해자들은 철제 나선형 계단을 타고 5층 조사실로 끌려갔다. 72개 계단으로 세 바퀴를 돌게 돼 있는 나선형 계단은 끌려온 방향이나 자신이 끌려가는 층수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면서 심리적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유동우 소장은 “눈을 가린 상태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 떠밀리면 안 되니 앞에서 수사관 한 사람이 옷깃이나, 옷이 없는 경우 머리끄덩이를 잡고 올라갔다”라며 “이 나선형 계단은 2층, 3층, 4층으로 나가는 통로가 없다.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5층까지 끌려 올라가 바로 조사실로 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승강기를 타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509호 조사실로 이동했다.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14일 이곳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경찰 수사관들의 가혹한 조사를 받다가 물고문 끝에 숨졌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축소·은폐 기도가 폭로되면서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김정숙 여사는 안개꽃과 카네이션, 장미꽃으로 직접 만든 꽃을 박종철 열사 영정에 헌화했고 참석자들은 나란히 서서 묵념했다.

문 대통령은 조사실에 들어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던 물고문용 욕조를 보며 “이 자체가 처음부터 공포감이 오는 것”이라며 “물고문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자신이 조사실에서 겪었던 경험과 심정에 대해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왼쪽 손으로 욕조를 짚은 채 경청했다. 김정숙 여사는 폭행 경험을 듣고 안타까움의 한숨을 쉬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 대통령은 “철저하게 고립감 속에서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라며 “그래도 경찰에서 이곳은 민주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내놓은 것도 큰 용기”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10여초간 묵념을 하고 조사실을 나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와 민갑룡 경찰청장과 인사했다.

문 대통령은 민 청장에게 “이 장소를 민주인권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해주시고, 어제는 공개적으로 사과 말씀도 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고, 민 청장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이곳을 경찰의 역사 순례길로 지정해 새로 경찰이 된 모든 사람이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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