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10일 지난 5개월 동안 남한의 행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이 대남공세에 나선 것에 대해 “북한 내부가 그만큼 어렵다”며 “지난 5개월 동안 대꾸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창비) 출간 간담회에서 “지난 5개월간 많은 대북제재가 있었음에도 일언반구도 안하던 북한이 전단 살포를 구실로 남북관계를 단절하고, 적대감이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쓰고 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은 지난 1월28일 국경이 폐쇄됐고, 4월에 초중고 개학을 해야 하는데 6월1일에 했다”며 “이는 이미 코로나19가 (북한에서) 돌았다는 이야기로, 청정지역이라는 말과는 모순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노동신문에도 강원도에서 격리해제자가 300명, 황해남도와 평안남도에서 700명 나왔다고 기사가 나왔더라”라며 “코로나19가 (북한 내부에) 전파되고 있고, 어른들이 공장기업소에서 작업을 못하고,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니 생산성이 형편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남쪽에서는 보건의료협력 같은 것을 말하니, 아마 척 받고 싶었겠지만 이후 대북제재 저촉 등으로 발목잡히면 아무 것도 못할테니 그걸 제끼고 나올 수 있는지 확인되면 받자고 하고 기다리다 시간이 흘렀다”며 “또한 북한에게 올해가 중요한 이유가 노동당 창건 75주년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10월10일 평양에 종합병원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골조공사는 마무리돼가는 것 같지만 완공된들 의료기기가 못 들어오면 소용 없지않나”라며 “넉 달 남았는데, 기념식을 성대히 치르려 했는데 5개월이 지나가버리니 잔뜩 짜증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동당 창건을 성과적으로 빛낼 수 없으니 그나마 질서유지하고 체제 안정하는 게 최고존엄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을 끄는 건데, 직격탄으로 이런 식의 삐라(전단)를 뿌리니 그러잖아도 속이 터져서 화를 내고 싶었는데 걸린 것”이라며 “4·27 판문점 선언이고 9·15 선언이고 하나도 이행 안하고 미국 핑계만 대니, 복합적으로 쌓인 것”이라고 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최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 관련 업무에 나서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국회의에서도 화학공업 이야기만 했는데, 그건 결국 농산 문제”라며 “식량부족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대내통치, 특히 경제발전 내지는 경제문제해결에 주력하는 것이고 대남대미문제는 사실상 넘버2인 김여정에게 넘긴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사실확인은 못했지만 최근 김여정을 ‘당중앙’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지시가 들릴 정도인데, 1970년대 김정일이 김일성 시대에서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됐을 때 당중앙이라고 불렸다”며 “김여정이 나중에 (김정은에게) 일이 생기면 직접 최고존엄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리에 내정된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고서는 대외직명상 제1부부장이 당의 부위원장을 지휘해서 대남 대적 활동을 하겠다? 이쪽 일은 간부들 데리고 처리하라고 하고 사실상 분업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인민단결을 위해서는 밖의 적이 필요한데, 태평양 건너 미국 트럼프를 적으로 하는 건 실감이 안 나고, 미국이 북한에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은 게 많지도 않다”며 “(그런데 한국은) 확실하게 믿으라고 신호 주고 큰소리 쳤는데 아무것도 된 게 없으니, 특수한 시기적인 상황인 게 남북관계를 이렇게 끌고 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판문점의 협상가’는 지난 40여년간 남북관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정세현 수석부의장의 어린 시절부터 여전히 남북 문제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현재의 모습까지 다루며 분단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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