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비핵화’ 한발짝도 못나가
北, 조만간 對美 무력시위 가능성… 북미관계도 2년 전보다 후퇴 우려
美 국무부 “北, 외교로 돌아오라”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2년 전인 2018년 6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하루 앞으로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싱가포르 선언’ 2년이 다 되도록 비핵화 협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북한은 북-미 중재자를 자처했던 한국을 적(敵)으로 규정하며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을 일방적으로 끊었고, 미국을 향해서도 본격적으로 날을 세울 태세다. 북한이 조만간 미국을 겨냥한 무력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남북 관계는 물론이고 북-미 관계까지도 2년 전보다 퇴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 시간) 최근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강경 위협에 대해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며 “북한이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을 향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말 북한이 ‘성탄절 선물’을 거론하며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을 당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 고위 당국자들이 비슷한 언급을 내놓았지만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 같은 가정을 전제로 한 경고였다.
미국이 ‘실망’이라는 이례적인 표현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2년 동안 북한 비핵화 문제가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8년 북-미 정상은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설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 및 전쟁실종자 유해 미국 송환 등 4개 항으로 된 ‘싱가포르 선언’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듬해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아무런 후속 조치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여기에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이 곧 공세의 타깃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미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만큼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공언한 김 위원장이 무력시위를 통해 대선 무대를 흔들고, 영향력 극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대북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도 북한이 행동에 나설 이유로 꼽힌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톱-다운’ 방식 대신 실무 협상을 강조하고 있고 김 위원장을 ‘불량배’, ‘독재자’로 부르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수시로 도발을 일삼았던 2017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도 미국의소리(VOA) 방송을 통해 “북한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예전의 각본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이 각본에서 단 하나의 새로운 요소는 북한이 한미동맹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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