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세차례 도발엔 침묵하더니… 靑, 대북전단엔 이례적 입장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2일 03시 00분


靑 NSC “대북전단 엄정 대응”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비난 담화에 통일부가 탈북자단체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지 하루 만에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전단 살포 처벌에 대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도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면서 ‘대북 저자세’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 도발 땐 없던 공식 입장문 내고 “엄정 대응” 밝힌 NSC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오른쪽)이 11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북전단 및 물품 살포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들과 상의하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오른쪽)이 11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북전단 및 물품 살포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들과 상의하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청와대는 11일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앞으로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문을 내놨다.

회의 후 직접 브리핑에 나선 김유근 NSC 사무처장은 “일부 민간단체들이 대북 전단 및 물품 등을 계속 살포해 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러한 행위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사무처장이 직접 브리핑에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에 대한 발표 이후 7개월 만이다.

청와대가 대북 전단 문제에 대해 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공식 입장문을 낸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 들어 세 차례 감행된 북한의 도발과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 때도 NSC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는 이날 전날 통일부가 내건 남북교류협력법과 4·27 판문점 선언에 더해 5건의 남북합의와 3개의 법률을 대북 전단 살포 처벌의 근거로 제시했다. 우선 페트병에 쌀을 담아 북한에 보내는 것이 국가 소유의 바다, 하천인 공유수면에 폐기물을 버리는 행위를 금지한 공유수면법을 위반했고, 풍선에 전단을 넣어 보내는 것이 초경량비행장치 사용 시 국토교통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는 항공안전법을 위반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또 노무현 정부에서 채택한 6·4 합의서, 노태우 정부에서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박정희 정부의 7·4 남북공동성명에 따른 남북조절위원회 공동발표에 담긴 전단 살포 중단 합의를 위반했다고도 했다.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은 판문점 선언을 처벌 근거로 내건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만들어진 남북 합의문까지 들고나온 것.

그러면서 김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오래전부터 대북 전단 및 물품 살포를 일절 중지했고 북측도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대남 전단 살포를 중단했다”고 했다. 북한은 남북 합의를 지키고 있는데 탈북자 단체가 이를 지키지 않아 최근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의미다.

○ 청 관계자 “대북 전단 내용이 너무 자극적”
대북 전단 살포 처벌을 놓고 통일부에 이어 하루 만에 청와대까지 나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대북 전단을 이유로 통신연락선을 차단하자 ‘대북 전단 문제를 책임지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전면적인 남북관계 단절을 재고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대북 전단의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다.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라며 “정부의 조치가 나온 뒤 노동신문 등의 톤에 일부 변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통일부가 탈북자 단체를 경찰에 고발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통일부는 이날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큰샘(대표 박정오)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교류협력법은 물론이고 청와대가 이날 밝힌 항공안전법, 공유수면법 위반 혐의를 추가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NSC 공식 입장문에 대한 참고자료로 ‘국민 생명에 대한 위험 사태 시 경찰관은 억류, 피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11일 성명에서 “(탈북자 단체 설립 허가 취소 조치는) 집회 결사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경 지역의 안보나 대북관계 같은 모호한 호소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전단은 상대적으로 무해한 표현 방식이므로 금지하면 안 된다.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도외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황인찬 기자
#대북 전단#통일부#청와대#n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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